[행복한 아침] 아이가 떼 쓸 때
입력 2010-10-08 17:42
추석 연휴에 막내딸네 가족과 함께 여행을 갔다. 21개월 손녀, 36개월 손자와 오랜만에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기회였다. 함께 지내는 동안 역시 많은 일이 일어났다. 기억에 남는 것은 엄마와 아이 둘이 근처에 산책을 나갔을 때의 일이었다.
우리가 묵은 콘도는 사생활을 보호한다는 차원에서 낮은 담과 나무로 울타리를 만들어 놓았다. 아이 눈높이에는 울타리 너머가 보이지 않지만 어른들은 아이의 안전을 쉽게 파악할 수 있는 구조였다. 갑자기 밖에서 아이의 자지러지는 울음소리가 들려 나가 보려는데 딸이 손녀를 안고 화난 얼굴로 들어섰다. 손자는 어디 있나 궁금해서 “정연이는?” 했더니 “아무리 들어가자고 해도 안 온다고 떼써서 그냥 왔어요”라고 했다. 그리고 아빠에게 바로 앞에 아이가 있으니 데려와 달라고 했다.
울며 떼쓰는 아이를 아빠가 데리고 들어오자 아이는 잽싸게 엄마에게로 달려갔다. 아이의 두 손을 마주 잡은 애 엄마가 “정연아, 아침을 먹으려면 돌아와야 하는데 넌 안 들어오겠다고 했지? 다음엔 엄마가 들어오자고 할 때 들어오면 고맙겠어. 아침을 먹어야 하니까” 했다. 정연이는 엄마 품을 파고들며 “엄마 미안해” 했고 엄마는 아이를 꼭 껴안으며 “사랑해” 했다.
아이를 키울 때 자주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이런 대화를 하게 되면 어른들은 ‘갈등 상황이 일단락됐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엄마 방에서 나온 정연이는 곧바로 나에게 오더니 “할머니, 엄마가 나 두고 갔어” 하며 억울하고 속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집 못 찾을까봐 무서웠어?” 했더니 “응!” 했다. “화나고 속상했어?” 했더니 더 큰 소리로 “응. 엄마 미워!” 했다. “엄마가 너를 두고 와서 우리 정연이가 정말 속상했네. 그런데 엄마는 왜 정연이보고 들어가자고 했을까?” 했더니 못 들은 체하며 “더 봐”라고 말했다. “정연이는 밖에서 더 놀면서 이것저것 더 보고 싶었어?” 했더니 “이것저것”이라고 수긍했다.
다정한 말투로 “정말 화났겠다. 우리 정연이”라고 해주자 아이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이의 속상하고 화난 감정을 인정한 후, 다시 아이에게 “정연아, 그런데 엄마도 화났어. 네가 막 떼쓰고 울어서 엄마는 네 마음을 알 수 없었어. 그래서 더 화났어” 했다. 아이는 약간 놀라는 표정으로 “엄마 화?”했다.
정리해 보면, 아이는 엄마와 밖에서 더 놀며 관찰하고 싶은 것이 많았고 엄마는 아이에게 빨리 음식을 먹여야겠다는 마음이 앞서 갈등이 일어난 것이었다. 엄마가 정연이의 의도를 관찰해 “정연이 밖에서 더 놀고 싶어?”라고 마음을 알아준 뒤 “우리 아침 먹고 다시 나와서 더 많이 보자” 했더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갈등이다. 그러나 자신이 화났을 때 동시에 엄마도 화날 수 있다는 것을 36개월 된 아이가 인식하게 된 것은 대단한 소득이었다. 난 이 과정을 지켜보며 “우리들도 하나님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훈련을 해야 믿음이 자란다”는 목사님의 설교가 떠올랐다.
이원영<중앙대 유아교육과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