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 전도왕’에서 목회자돼 교회 개척 나선 김인아 목사

입력 2010-10-08 17:40


“하나님은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내 마음속에 변함없는 소망을 주셨습니다. 그 소망을 붙들고 오직 복음을 향해 달려왔습니다. 어떤 때는 너무 힘들고 탈진해서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었지만, 오히려 그것으로 인해 복음의 능력을 덧입을 수 있었습니다.”

‘아줌마 전도왕’으로 불리는 김인아(54·구하리교회) 목사는 영혼구원의 소망을 붙들고 살아왔다. ‘복음을 알면 사랑을 알게 된다’고 여기는 그는 생명까지 내어주는 예수님의 사랑을 알게 되면 전도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한다. “전도는 영혼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그 사랑은 흔히 말하는 단순한 사랑이 아니라 내 목숨까지 내어주는 그런 사랑입니다.”

노량진교회 평신도 시절부터 아줌마 전도왕으로 알려진 그가 그동안 전도한 사람은 수만명에 달한다. 그가 생명을 걸고 전도하는 이유는 오직 한 가지이다. 한 영혼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는 아픔을 통해 영혼 사랑의 마음을 가질 수 있었다.

1982년 3세 된 그의 아들이 뇌수종 진단을 받았다. 두 번의 수술을 했지만 결국 하늘나라로 떠나보내야 했다. 삶의 모든 에너지가 한순간에 소멸돼 버린 듯했다. 자식을 잃은 어미의 마음은 한없는 나락을 헤맸다. 피투성이가 된 심장을 끌어안고 있을 때 주님은 ‘긍휼’이란 단어를 떠오르게 하셨다. “내가 살아가면서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 주님이 나보다 더 아파하는 모습으로 내 곁에 오셔서 나를 안아주시고 위로하시며 아픈 곳을 싸매주셨어요.” 이전에 가지고 있던 모든 가치들이 깨졌다. 많은 사람들을 하나님께 돌아오게 만드는 하나님의 심부름꾼으로 살기로 했다.

김 목사는 서울장신대와 장신대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1996년 과천교회 전도사로 부임했다. 40명의 전도대원들을 이끌면서 수많은 열매를 맺었고 전국 교회를 순회하며 전도집회, 간증집회를 인도했다. 그는 본을 보이기 위해 남들보다 조금 더 부지런히, 조금 더 열심히 하나님께 기도했다. 매일 새벽 3시, 눈을 뜨자마자 교회로 달려가 믿지 않는 이들의 영혼 구원을 위해 기도했다. 또 끈기와 열정의 ‘김인아식 전도법’을 통해 교인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그가 과천교회에 온 지 12년째 되던 해 ‘2만성도 출석 감사예배’를 드렸다.

그는 늘 겸손해지기 위해 노력한다. 특히 목회자가 겸손하지 않으면 성도들에게 상처를 준다고 생각한다. 그는 국내외 많은 교회에서 집회를 인도하면서 유명해지자 ‘교만해지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을 느꼈다. 그러던 어느 주일날, 교회 주보에 ‘돌아가신 여성 성도님을 정성스럽게 염을 해주실 여성 성도님을 모집합니다’란 광고를 봤다.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라고 생각하고 염하는 방법을 배웠다.

“처음 시신에 손을 대는데 갑자기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흘렀어요. 인간은 아무것도 아닌 존재이며 주님이 계시기에 내가 존재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언젠가 나도 이 자리에 누울 텐데 그땐 어떤 모습일까란 생각을 하자 숙연해졌어요. 자신을 낮추기 위해 시작한 이 일을 계속할 것입니다.”

김 목사는 과천교회와 노량진교회에서 14년5개월간 부교역자 훈련을 마치고 경기도 죽전 부근에 구하리교회를 개척했다. 오는 12월 입당예배를 드리는 이 교회는 280평 대지 위에 300평 규모로 건축 중이다. 김 목사는 “성도들이 교회에 오면 위로받고 평안을 누리는 교회, 아픔을 안아주고 함께 웃는 교회를 만들어 갈 것”이라고 말했다. 아직 성도는 한 명도 없지만 걱정하지 않는다고 한다. 교회부흥은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한 명을 소중히 여길 때 100명이 되고 1000명이 됩니다. 예수님도 한 마리의 잃은 양을 소중히 여기셨어요.”

한편 김 목사는 노량진교회, 과천교회에서 아줌마 전도왕으로 불리며 구하리교회를 개척하기까지의 이야기를 담은 ‘아줌마 전도왕 그리고…’(베드로서원)를 최근 출간했다. 김 목사의 감동적인 전도이야기와 ‘김인아식’ 억척 전도법을 만날 수 있다.

이지현 기자 jeeh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