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우강호, 중화주의 ‘허세’ 빼고 그린 검객들의 사랑과 복수

입력 2010-10-08 18:46


‘영웅본색’, ‘첩혈쌍웅’을 연출한 우위썬(吳宇森) 감독의 신작이라는 사실만으로도 팬들의 귀를 솔깃하게 만들기에 충분한데, 정우성이 주연이라고 한다. 우위썬 감독은 전작 ‘적벽대전’ 때도 정우성을 부르려고 했는데 정우성의 스케줄 때문에 무산된 적이 있다고.

배경은 700여년 전 중국 명나라 초기. 티베트에서 온 라마의 시신을 손에 넣는 자가 강호를 제패한다는 전설로 인해 여기저기서 피바람이 분다. 검객 집단 ‘흑석파’는 각고의 계획 끝에 라마의 시신 반쪽을 갖고 있는 재상 일가를 잔인하게 살해한 뒤 시신을 차지하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흑석파 일원인 ‘정징’(양쯔충·楊紫瓊)이 시신을 갖고 사라져버리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정징은 얼굴과 이름을 바꾸고 평범한 남자와 결혼하지만, 흑석파는 호시탐탐 그녀를 노리고 있다.

화려하고 정교한 와이어 액션과 배우들의 안정된 연기력, 미려한 연출은 그다지 그럴싸해 보이지 않는 초반부 로맨스와 예상이 힘들지 않은 반전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빛나게 하는 힘이다.

최근 중국 액션대작들에서 보여졌던 특유의 과장된 장엄함과 중화주의적 자신감이 거북했던 관객이라도 ‘검우강호’를 보는 데는 별 무리가 없을 듯. 무협과 사랑이 적절히 조화된 이야기는 날아다니는 듯 가벼운 양쯔충의 연검만큼이나 유연하다. 감독이 인정한 바대로 ‘명나라 판 미스터&미세스 스미스’라고 해도 큰 문제 없을 듯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한국 팬들의 눈길을 끄는 건 정우성일 수밖에 없다. 순박한 듯 수상한 듯 항상 정징의 곁을 지키는 충실한 남편 역을 맡은 그는 기대 이상의 중국어 실력과 함께 관록이 붙은 연기력을 보여준다. 가식과 진실, 냉정과 사랑이라는 상반된 감정을 어색하지 않게 오가며 날렵하게 검술을 선보이는 모습이 근사하기 이를 데 없다.

우위썬 감독이 차기작에도 그를 부르기로 했다 하니 한류스타 정우성이 명실상부한 범아시아 배우로 우뚝 설 날도 멀지 않았다.

양쯔충 역시 이름값에 어울리는 무게감으로 극의 중심을 잡은 것은 물론이다. 잔인한 여검객 역을 맡은 쉬시유엔(徐熙媛)도 제 역할을 해냈으니, 말하자면 야망과 사랑과 복수가 세련되게 가미된 우 감독 식 무협의 매력을 제대로 보여주는 영화다. 중국·홍콩·대만 합작으로 만들어졌다. 15일까지 열리는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이기도 하다. 12세가. 14일 개봉.

양진영 기자 hans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