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윤성희, 등단 11년만에 첫 장편 ‘구경꾼들’ 펴내
입력 2010-10-08 17:51
“삶이란 그냥 어리둥절해 하는 것 아닐까?”
“새벽 세시에 일어나 달이 어디쯤 떠 있는지를 확인하고, 따뜻한 차를 한 잔 마시고, 그리고 낡은 노트북의 전원을 켰다. 하루 치의 원고를 넘기고 나서 창밖을 보면 아침 출근 준비로 집을 나서는 사람들이 보였다. 날은 점점 쌀쌀해져갔다. 그러면 나는 노트북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글을 썼다.”
소설가 윤성희(37)가 등단 11년 만에 첫 장편 ‘구경꾼들’(문학동네)을 펴내면서 한 말이다. ‘낡은 노트북’에 눈길이 간다. 노트북이 난로처럼 따뜻하게 여겨진다는 그 말은 귀하고도 진실된 표현일 것이다. 사실(fact)이 넘쳐나는 우리 시대에 진실(truth)를 선별하기란 너무나 어렵다. 우리 안에 무엇이 있을까, 혹은 무엇이 없을까, 하고 자문자답을 해도 잘 모르겠는 게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삶과 우리가 쓰는 단어는 괴리되어 있는 것이다. 소설은 작가 자신의 말처럼 “우리는 자신을 어느 정도까지 경험할 수 있는 걸까?”라고 질문을 맴돌면서 전개된다.
이야기는 1인칭 화자인 소년 ‘나’를 통해 흘러나오지만 정작 이야기의 광맥은 ‘나’ 밖의 존재들이다. 나를 둘러싼 주변의 사소한 것들이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세상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다. 소설은 한 장의 가족사진을 연상시킨다. 그것도 직계와 방계를 합친 대가족이다. 증조할머니,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고모, 큰삼촌, 외할머니…. ‘나’는 그들을 지켜보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성장한다. 이쯤이면 작가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야말로 우리 모두의 이야기임을 눈치 채는 건 어렵지 않다.
“신생아실에 누워 있는 조카를 보며 생각한 적이 있어요. ‘나는 이제 아주 재미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라고요. 세상의 먼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되고 싶었지요. 훗날 성장한 조카와 마주 앉아 낯선 세계의 이야기, 한번도 만져보지 못한 사물들, 이미 죽었거나 아직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제 모습을 상상하곤 했습니다. 타인과 사물들,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이야기를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이야기는 아마도 나로부터 가장 먼 곳에서 던져진 이야기가 아닐까 합니다.”
소설은 등장인물들의 사소한 신변잡기로 시작되고 있지만 무한대의 가지 뻗기로 확장된다. “아버지는 이마에 세 바늘을 꿰맨 것이 전부였다. 오른쪽 어깨가 부러진 줄 알았는데 단순히 뼈가 골절된 거였다.”(77쪽), “나는 큰삼촌에게 야구 모자를 물려받았다. 모자는 컸다. 눈을 덮을 정도로. 평소에는 챙을 뒤로 돌려 거꾸로 썼지만 불리한 일이 생길 때면 똑바로 모자를 썼다.”(91쪽), “말없이 이야기를 듣던 어머니가 아버지의 옆구리를 찔렀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어디나 사람 사는 곳은 똑같다는 말을 증명하기 위해 애쓰는 것처럼 느껴졌다.”(110쪽), “할아버지는 월급을 타면 증조할머니에게 모두 드렸기 때문에 할머니는 돈 몇 푼 모으는 일이 쉽지 않았다.”(254쪽)
마치 띄엄띄엄 쓰는 가족 일기 같다. 이걸 딱히 이야기의 전개라고 부를 이유는 없다. 그냥 이야기인 것이다. 살아가는 이야기 말이다. “최근에 저는 삶이란 이런저런 것들을 쳐다보고 그냥 어리둥절해하는 일은 아닐까, 하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삶은 언제나 우리가 쓰는 단어들을 넘어서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작가들은 그 단어에 자유를 주기도 합니다. 어떤 작가들은 그 단어들을 초월한 이야기를 만들어내고요. 그래서 저는 최선을 다해 이런저런 것들을 쳐다보기로 했습니다. 최선을 다해 어리둥절해하기로 했습니다.”
더 무슨 말이 필요할까. 소설을 붙들고 미로를 헤매다보면 뭔가 희미한 게 눈에 들어온다. 윤성희의 소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누구에게나 이야기가 있었구나, 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대문자역사의 중심에서 세상을 움직여나가는 이들뿐 아니라,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소소한 일상을 겨우겨우 버티어나가고 있는 나에게도, 내 주변에도 수많은 이야기들이 살아 있었음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라는 울타리 안에 넣을 수 있는 모든 ‘우리’의 삶을 기억해주고 새롭게 이야기해주는 작가가 우리 곁에 있다는 게 다행이다.
정철훈 선임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