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1인 출판 뛰어든 이광희·이재휘씨… “출판사서 원고 안받아줘 아예 차렸어요”

입력 2010-10-07 18:29


-책 많이 팔렸어요?

“아뇨(웃음). 아마존은 한글 책을 받지 않아요. 아직 한글은 검수 기능을 갖추지 못한 것 같은데, 그래서 저도 영어로 올렸어요. 전자책 쓰는 법에 관한 거예요(제목은 ‘How to write eBooks and share your stories to the world’). 판매량은 간신히 두 자릿수에 들어섰어요.”(이재휘)

“저는 소설인데도 마찬가지예요. 전자책 콘텐츠 중에 제일 많은 게 소설이거든요. 종이책의 절반이나 3분의 1 가격이니까 부담 없이 사서 읽기 좋은 편이데, 아직 돈 벌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에요.”(이광희)

-그런데 왜 하는 거죠?

“일단 내 책을 갖고 싶고, 그냥 인터넷 카페나 블로그에 쓰는 글보다 완성된 느낌을 줘요.”(이광희)

“대학원 진학을 준비 중이에요. 교육학 전공이거든요. 전자책은 교육에 활용할 게 많아요. 아이북스 전자책엔 동영상, 링크, 음성파일도 넣을 수 있어요. 멀티미디어 교재, 창의성 향상 교재가 되는 거죠.”(이재휘)

-전자책과 어떻게 친해진 거죠?

“제가 근무했던 전자회사가 PDP 화면 만드는 곳이었어요. 전 출판에 관심이 있어서 e북 단말기 사업 아이디어를 계속 올렸다가 퇴짜 맞곤 했죠. 그러다 올 봄에 회사 그만두면서 e북 업체들을 전부 찾아다니며 공부했어요. 새로 구한 직장도 한 출판사의 전자책 사업팀이에요.”(이광희)

“인터넷교보문고에서 근무하면서 알게 됐는데 아동도서로 제작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이재휘)

현재 디지털교보문고는 약 7만2000권의 전자책을 확보하고 있다. KT의 온라인 서점인 쿡북카페는 약 10만권, 북큐브는 3만권 정도. 대다수는 이미 출판사들이 펴낸 종이책을 전자책으로 옮긴 것이다.

아직 전자책 출판에 뛰어드는 이들은 극소수지만 동기는 책의 종류만큼이나 다양하다. 인터파크 북씨는 최근 ‘길 위의 사람들’이란 르포소설 출판 계약을 체결했다. 저자는 부산역 광장에서 통기타를 치며 공연하는 이호준(50)씨. 10년째 부산역 노숙인들과 부대끼며 돕다가 ‘실직노숙인조합’이란 단체까지 만들어 위원장 직함을 갖고 있다.



이씨는 “10년 전 수재의연금 모금 공연을 하러 서울서 내려왔는데 부산역 노숙인들을 보고 눌러앉아 함께 생활했다. 조합은 일종의 노숙인 권익운동 단체이고, ‘길 위의 사람들’은 그들과의 에피소드를 엮은 책”이라고 말했다. 노숙인 문제를 알리려고 몇 년 전부터 글을 써왔는데 전자책에서 출판 기회를 찾았다고 한다.

블로그 누적 방문자 수가 2000만명이 넘는 야후 파워블로거 김창원(52·필명 울프독)씨도 최근 전자책으로 동물학 서적 ‘쿠빌라이의 매 고려 해동청’을 펴냈다. 김씨는 긴 글을 소화할 공간을 찾다가 전자책을 택했다고 했다.

“너무 긴 글은 블로그에 올리기가 부담스러워요. 독자들도 일일이 화면을 내려가며 읽어야 되니까 불편해하죠. 앞으로 시장이 좀 더 커지면 저 같은 생각으로 뛰어드는 블로거가 많을 겁니다.”

‘아이북스 퍼블리셔’ 카페를 만든 김지명(27)씨는 전자책에서 비즈니스 모델을 찾는다. 직접 아이북스에 책을 펴내며 전자책 출판업 등을 구상 중이다. 최근엔 카페 회원들과 함께 전자책 정보를 알리는 주간지를 전자책으로 펴내려고 준비하고 있다.

디지털교보문고 유영신 디지털콘텐츠사업 파트장은 “출판사 거치지 않고 개인이 직접 전자책 출판하려는 문의가 지난해보다 많아졌다. 장르소설은 전자책 먼저 출판하는 관행이 굳어져서 개인이 정식 출판사보다 많은 수익을 거두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전자책 1인 출판에 뛰어드는 이들의 최대 고민은 책 홍보다. 대형 출판사처럼 광고를 할 수도 없고, 온라인 서점에서 좋은 자리에 노출되기도 쉽지 않다. 광희, 재휘씨에게 물었다.

-무슨 방법이 없나요?

“우리끼리 농담 삼아 하는 얘기가 ‘홍보가 안 되면 많이라도 쓰자. 매일 한 권씩’이에요.(웃음)”(이광희)

“방법이 있긴 해요. 소셜 네트워크를 최대한 활용하는 거죠.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통해 책 얘기가 퍼져나가게 하는 식으로. 돈 들이지 않고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홍보수단이에요. 전자책 플랫폼이 되는 스마트폰과도 잘 맞는 방식이고요.”(이재휘)

지난 4월 출범한 전자책 전문 출판사 ‘이펍팩토리’는 윤찬웅(45)씨의 1인 출판사다. 지금까지 20권을 출판한 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전자책 1인 출판시대는 열렸어요. 출판까지는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누구나 할 수 있죠. 문제는 출판 이후예요. 개인의 마케팅이나 영업력엔 한계가 있잖아요. 아직 시장도 작아서 수익으로 연결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어요. 지금 뛰어드는 사람들은 다 미래를 보고 가는 거죠.”

애플의 온라인 서점 아이북스는 지난 4월 태블릿PC 아이패드 출시와 함께 서비스를 시작했다. 올해 아이북스로 판매될 도서량은 400만권 정도로 추정되지만 3∼4년 안에 e북 단말기 킨들의 아마존을 앞서리란 예상이 나온다. 아이북스에선 벌써 1인 출판자가 펴낸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경우도 종종 나오고 있다.

국내에도 이런 전자책 오픈 마켓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인터파크 북씨와 유페이퍼에 이어 KT가 이달 중순 아이북스와 흡사한 서비스를 내놓는다.

KT는 쿡북카페에 누구나 책을 올리도록 ‘셀프 퍼블리싱’ 서비스를 시작하기로 했다. 일반 워드 문서로 책을 쓴 저자가 이 사이트에서 바로 전자책을 제작할 수 있도록 이펍 프로그램도 개발했다. 서비스 개시와 함께 유명 블로거나 작가들이 참여토록 대대적인 이벤트와 프로모션을 준비하고 있다.

이 서비스를 총괄하는 한희원 팀장은 “올해 말까지 1인 출판자들이 전자책을 1000권 이상 올리도록 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이렇게 출판되는 전자책은 컴퓨터, 아이폰과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의 스마트폰, 태블릿PC 아이덴티티탭과 함께 IPTV로도 읽을 수 있도록 구현할 계획이다.

북큐브 이상수 팀장도 “1인 출판 문의가 월 수십 건씩 계속 늘어나고 있어 오픈 마켓 서비스를 검토하고는 있다”며 “다만 시장 상황 등을 고려해 타이밍을 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광희, 재휘씨는 갤럭시탭과 아이패드 같은 태블릿PC의 국내 성공 여부가 전자책 시장의 분기점이 될 수 있다고 기대했다. 갤럭시탭은 이달 중, 아이패드는 늦어도 내년에 출시될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국내 시장에서 미국과 같은 전자책 바람이 불지, 소비자들이 어떤 선택을 할지는 미지수다.

-전자책 출판, 계속할 건가요?

“지금도 책 한 권 구상하고 있어요. 쓰는 대로 계속 출판할 거예요. 아직은 고급 취미에 가깝지만 준비하는 차원에서.”(이광희)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