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보 2호] 김성혜 총장, 노승숙 회장 감금 ‘사퇴각서’ 받았다
입력 2010-10-03 18:59
2010년 8월 28일 토요일이라 인적이 뜸한 오후 4시. 국민일보 빌딩에 노승숙 국민일보 회장이 나타났다. 주말 늦은 오후에 회사 건물로 급히 달려온 것은 11층에 집무실이 있는 김성혜 한세대 총장의 호출 때문이었다. 벌써 두달째 사퇴 요구로 시달리고 있던 터라 각오는 했지만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이로부터 밤 8시까지 4시간 동안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장로 노 회장에게 김 총장은 ‘뭇사람의 안사돈’이 아니라 ‘조용기 원로목사님의 사모님’이다. 하지만 노 회장은 김 총장의 권위에 눌리지 않고 끈질긴 사퇴 요구에 버텼다. 치통 때문에 병원에 가야한다며 몇 번이고 일어서 나오려고 시도했다. 그때마다 김 총장은 “사표 쓰기 전에는 못 나간다”고 가로막았다. 집무실 밖 응접실엔 이인재 한세대 총장비서실장과 조희준씨 비서가 버티고 있어 뛰쳐 나갈 수도 없었다.
급기야는 김 총장이 두툼한 서류뭉치를 꺼냈다. 그리고 한 사람을 불렀다. 그를 보는 순간 노 회장은 깜짝 놀라 눈을 의심했다. ‘20년 넘게 국민일보 경리업무를 맡아온 사람이 아닌가!’ 3개월 전 경리팀장에서 자리를 옮겨 교계광고영업2팀장을 맡고 있는 김주탁씨가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이다.
정신을 가다듬고 서류뭉치를 들춰보니 300여쪽은 족히 됐다. 김 총장의 둘째 아들 조민제 사장과 노 회장에 대한 첩보 내용과 설상화씨 등 8인 장로가 8월 3일 서울서부지검에 제기한 노 회장 고발 자료는 물론이고, 8·15 대성회와 아가페 교도소 관련 공문 등 회사의 최근 경영 자료들이 포함돼 있었다. 이번엔 김 전경리팀장이 노 회장을 추궁했다. 그는 “노 회장이 사표를 내면 모든 일이 조용히 끝난다. 발행인은 김 총장께서 하면 된다. 그만 두지 않으면 양심 선언하겠다”고 협박조로 강권했다.
노 회장이 “(양심선언) 할테면 하라”고 하자, 김 총장은 “일을 왜 시끄럽게 만들려고 하느냐”면서 자신이 직접 노 회장의 사퇴각서를 다음과 같은 취지로 써내려갔다.
“본인은 일신상의 이유로 국민일보 회장과 발행인을 9월 28일자로 사임합니다. 후임 발행인으로는 김성혜 한세대 총장을 추천합니다.”
김 총장이 쓴 ‘사퇴각서’에 서명을 하고 나서야 노 회장은 집무실을 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장벽은 또 있었다. 응접실에서 대기하던 이인재 비서실장과 조희준씨 비서가 엘리베이터를 발로 가로막고 “녹음기 내놓으시죠”라고 하면서 노 회장의 몸을 수색했다. 한술 더 떠 밖에 나가서 발설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라고 요구하자, 이를 참지 못한 노 회장은 “이게 무슨 짓이냐”고 노발대발하고 나서야 11층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4시간에 걸친 ‘악몽’의 접견실을 빠져나온 노 회장에게 무슨 생각이 스쳐갔을까. ‘모든 것이 치밀한 시나리오에 따라 진행되고 있다’이었을 것이다.
지난 7월 18일 회사 간부 5명을 불러 모아놓고 조희준씨가 자신에게 오해를 품고 있는 것에 대해 해명했던 발언 내용이 그대로 녹취된 것도 김성혜-조희준 모자의 지시를 받은 김주탁씨 작품이었던 것이다. 이 녹취록을 무기로 조희준씨는 나흘 뒤인 7월 22일 노 회장을 서울가든호텔 커피숍으로 불러 “발행인으로서 부끄러운 짓 그만두고, 명예롭게 물러나라. 내일 3시까지 답변해 달라”고 요구했고 노회장이 사퇴를 거부하자, 8월 3일 설상화씨 등 장로 8인을 통해 서울서부지검에 고발했었다.
사퇴 압박은 이후에도 계속됐다. 지난 9월16일 국민일보 비상사원총회가 개최됐을 때에도 노 회장은 김 총장에게서 “사원들에게 공개 발표하
라”는 압박을 받았고, 다음날(17일)엔 끝내 사의를 표명하는 공지를 인트라넷에 띄웠다.
13년간 조용기 원로목사의 비서실장을 지낸 최성재씨에게서도 같은 방법으로 사표를 받아 냈다는 소문이 여의도순복음교회 목회자와 장로들 사이에 퍼져 있다.
이상은 국민일보 비상대책위원회가 조희준씨와 김주탁씨의 증언, 국민일보 노사공동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 노 회장 주변 인물의 증언 등을 토대로 당시 상황을 재구성한 것이다.
조희준씨는 9월 7일 조상운 국민일보 노조 위원장과 만났을 때 “국민일보에서 해고된 김주탁씨는 아무 죄도 없다. 다 내가 시켜서 한 일이다”라고 밝혔다. 또 지난 9월 3일 회사 기밀 유출 혐의로 해고된 김주탁씨는 국민일보 인사위원회에서 “지난 6월부터 조희준씨를 위해 일해왔다”면서 8월 28일 4시간의 사퇴 강요 현장에 있었음을 시인했다. 그는 또 “김 총장님이 그동안 여러 차례 노 회장에게 기회를 줬는데도 노 회장이 버티는 바람에 상황이 여기까지 온 것이다. 목사님이 살아 계실 때 재산정리를 해놓아야 시끄러워지지 않는다는 게 총장님의 생각”이라고 진술했다.
비대위는 이런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여러차례 김성혜 총장 측에 면담을 요청했으나 이뤄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