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여류시인, 한글 낭랑한 울림에 꽂히다… ‘한글로의 여행’
입력 2010-10-07 21:28
한글로의 여행/이바라기 노리코/뜨인돌
1991년 10월 9일, 일본 여류시인 이바라기 노리코는 한국에 들른 김에 서울 덕수궁 세종대왕 동상을 찾았다. 그는 세종대왕 동상 발밑에 수북하게 쌓인 꽃들을 보고 한국인의 남다른 모국어 사랑을 실감한다.
이바라기 노리코는 한국의 명시를 일본어로 번역한 ‘한국현대시선’으로 요미우리 문학상을 수상한 일본의 대표적인 지한파(知韓派) 시인이다. 이 책은 2006년 작고한 저자가 생전에 아사히신문에 한국 문화에 대해 연재했던 글들을 모은 칼럼집이다. 이미 일본에서는 1986년 발간돼 큰 인기를 얻었는데, 한국에서는 14년이 지나서야 발간됐다.
고인이 한국어를 배우던 1970∼80년대만 해도, ‘한류’는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로 한국문화는 일본에서 변방의 문화였다. 이 때문에 그는 ‘유별난 사람’으로 취급을 받았지만, 한글 공부를 중단하지 않았다.
저자가 한국어 공부를 시작한 표면적인 계기는 남편과의 사별이다. 쉰 살에 남편을 잃은 저자는 “어학을 죽기 살기로 공부해서 슬픔의 밑바닥에서 재기하려고” 했다. 그런데 왜 하필 수많은 언어 중에 한글에 꽂혔을까. 저자는 그저 자신도 모르는 어떤 힘에 이끌려 어렸을 때부터 한국의 문화를 좋아했다고 말한다.
특히 15살 때 읽은 김소운(1907∼1981)의 ‘조선민요선’을 아직도 기억하는데, 당시 한국 민요의 재치와 아름다운 발음에 감탄했다고 한다. 그 외에도 도자기, 윤동주의 시 등 자신은 유독 한국 문화에 끌렸다는 것이다.
좋아서 시작한 한국어 공부지만, 그 길이 순탄한 것은 아니었다. 특히 일본어는 된소리가 발달하지 않아, 일본인들은 한글 중에서 된소리를 배울 때 어려움을 느낀다. 저자는 ‘또’라는 부사를 배울 때 발음과 뜻을 이해하기 어려웠는데, 한국어 선생님이 악동 녀석들을 꾸짖는 행동을 흉내내면서 “또!또!또!또!”라고 소리쳐서 그 뉘앙스를 알게 됐다고 한다. 선생님이 회초리를 들고 소리치는 모습은 농가의 마당에서 “토우, 토우”하고 닭을 한 쪽으로 모는 농부의 모습을 연상시켜,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힘들었단다.
또한 서울의 한 지하철 개찰구에서 창구 직원과 승객이 서로 침을 튀기면서 논쟁을 하는 모습에서도 된소리와 거센소리의 ‘참맛’을 알게 됐다고 한다.
된소리와 관련된 역사적인 사건은 저자를 부끄럽게 만든다. 1923년 일본에서 관동대지진이 발생했을 때, 일본인들은 대지진의 원인이 한국이라며 한국인들을 무차별로 학살했다. 외양이 비슷한 일본인과 한국인을 구별하는 방법은 수상한 자를 붙잡아 ‘55전’을 일본어로 발음시켜보는 것이었다. 한국인은 탁음을 발음하지 못하기 때문에 ‘고’를 ‘코’라고 발음한다. ‘코쥬고젠’이라고 발음하는 사람은 목숨을 부지할 수 없었다.
저자는 한국어만큼 울림이 낭랑하고 아름다운 언어가 없다고 확신한다. 최화국의 시 ‘황천’의 마지막 부분 ‘살아라 살아라/자라라 잘 자라라/싸워라 싸워 싸워/자라 잘자라’를 읊으면서 각 행을 끝맺는 ‘∼라’에서 깊은 울림이 느껴지지 않느냐고 묻는다.
한국어 중 일부 어휘들은 아예 일본 지방의 사투리와 뜻과 소리가 같아 놀라움을 주기도 한다. 일본 야마가타현 쇼나이 지방에서 쓰는 아가, 아빠, 아네는 모두 한국의 아가, 아빠, 아내와 뜻과 소리가 같은 말이다. 또한 엄마가 아기를 업는 ‘어부바’는 쇼나이 지방에서는 ‘오부사케’라고 불린다. 일본 아낙들이 ‘오부사케’를 한다고 하니, 일본에 대해 친근감이 느껴진다.
한국어는 일본에 비해서 존칭어가 덜 발달한 편이다. 복잡한 존칭어에 익숙한 저자이지만, 한국어 중 ‘당신’ ‘∼씨’와 같은 호칭은 여전히 어렵다고 한다. 예를 들어, 사장 정도의 지위를 가진 사람에게 ‘당신’이라고 호칭해 주위를 당황하게 만들기도 했다는 것. 그 뒤로 저자는 높은 사람을 만나면 대부분 ‘선생님’이라고 한다면서 “먼저 태어나다(先生)라고도 해석할 수 있으니 괜찮지 않냐”는 기발한 해석을 내보인다.
책을 읽다보면, 일상에서 써온 ‘치맛바람’ ‘마음에 든다’와 같은 말들이 새삼 재치 있는 표현으로 보이기도 하고, 상대에게 욕설을 퍼부을 때 쓰는 ‘땅내가 고소하다’와 같은 속담들이 정겹게 느껴진다.
이선희 기자 su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