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 믿다가 끼니도 굶겠다”… 시중자금 ‘머니 무브’ 조짐 뚜렷

입력 2010-10-07 18:31


경기도 분당에 사는 김모(69)씨 부부는 금융자산에서 나오는 수익으로 생활하는 전형적인 은퇴자다. 퇴직공무원인 김씨의 재산은 158㎡ 아파트와 금융자산 8억원이다. 주거래 은행의 프라이빗 뱅킹(PB) 센터에 돈을 맡기고 연 8∼10% 수익률을 거둬 생활비로 썼다. 안정적 자산운용을 선호해 예금 비중 60%를 고수했다. 나머지는 주식형 펀드, 채권 등 금융시장 흐름에 맞춰 투자해 왔다.

최근 김씨는 투자방식을 바꿨다. PB센터에 맡겨 뒀던 돈 가운데 1억원을 빼 집 근처 증권사 지점에서 랩 어카운트(고객 맞춤형 자산관리계좌) 상품에 가입했다. 예금 비중을 40%로 줄이는 대신 단기 금융상품과 주식형 펀드, 원금보장형 주가연계증권(ELS)으로 돈을 돌렸다. 김씨는 “은행 예금금리가 너무 낮다 보니 이자만으로 먹고살기가 힘들어질 것 같아서”라며 “4%대라면 안전성 등을 감안해 그대로 두겠는데 2%대로 내려간다는 말도 있고 해서 주식 쪽을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시중자금이 은행에서 증시로 한 발씩 움직이고 있다. 만기가 6개월 이하인 금융상품이나 머니마켓펀드(MMF), 종합자산관리계좌(CMA) 등 단기상품에 머물면서 증시, 금리 상황을 관망하는 대기자금이 늘고 있다.

증시가 강세를 보이는 반면 은행 예금은 물가상승률, 이자소득세를 감안한 실질금리가 마이너스 수준까지 떨어졌기 때문이다. 특히 예금에서 나오는 수익을 주수입원으로 하는 이자생활자들이 이탈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안전자산에서 위험자산으로 돈이 이동하는 ‘머니 무브(Money Move)’ 현상이 일어나려는 것이다.

7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8월 은행권 수신액은 전월 대비 3조1637억원이 줄면서 4개월 만에 감소세로 반전했다. 요구불예금이 5조6962억원 줄었고, 정기예금 증가액은 7조2769억원에 그쳤다. 전월 대비 정기예금 증가액은 7월 12조4273억원과 비교해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국민은행 방배 PB센터 박승호 팀장은 “고객들이 예금 쪽에 무게를 두려 하지 않는다. 예금 비중을 줄이는 추세다. 1년 만기 정기예금 금리만 놓고 보면 4% 중반이 분기점인 것 같다”며 “지금은 돈이 증시 쪽으로 가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증시 주변자금은 증가세다. 빠른 속도로 올랐다는 부담 때문에 조정을 기다리며 증시에 들어갈 때를 찾고 있다.

금융투자협회가 발표한 3분기 증권시장 자금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말 현재 증권사 CMA 잔액은 6월 말보다 5980억원 증가한 41조9450억원을 기록했다. 고객 예탁금은 13조8150억원으로 6월 말(13조6570억원)보다 1580억원(1.2%) 증가했다.

랩 어카운트에도 돈이 몰리고 있다. 랩 어카운트 잔액은 30조원에 육박했다. 7월 말 현재 랩 어카운트 잔액은 29조8280억원으로 전월과 비교해 1조3120억원, 지난해 말과 비교해 10조원 가까이 늘었다.

우리은행 투체어스 강남센터 박승안 PB팀장은 “아직 기준금리 추가 인상의 여지가 있고, 시장금리가 계속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남아 있어 예금 만기를 짧게 가져가면서 연말까지 지켜보겠다는 고객이 많다. 주식은 여전히 불안하다고 느끼고 ELS나 랩 어카운트 등을 찾는다”고 말했다.

김찬희 기자 c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