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는 둥근데 왜 세계지도엔 유럽이 중앙에 있을까… ‘대륙의 발명’
입력 2010-10-07 17:35
대륙의 발명/크리스티앙 그라탈루/에코리브르
“터키의 수도는 유럽에 있지 않다. 인구의 95%가 유럽 밖에 있다. 즉 터키는 유럽 국가가 아니다.”
2002년 11월 7일. 프랑스 전 대통령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은 터키가 유럽이 아니라고 밝히며 공개 논쟁의 불을 지폈다. 유럽의 문호를 넓히려는 측은 지중해의 섬나라 키프로스와 몰타의 예를 들며 반박했다. 지도상으로 보면 키프로스는 아시아에, 몰타는 아프리카에 속하는데 별다른 저항 없이 2005년 유럽연합(EU)에 가입했다. 앞서 유럽연합은 모로코를 아프리카 대륙에 있다며 회원국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륙의 경계는 과연 어디까지인가. 가장 기본적인 근거는 지리적 위치다. 그러나 키프로스와 몰타의 예에서도 보듯 지리적 기준은 뒤죽박죽이다.
이런 관점에서 프랑스의 역사지리학자인 크리스티앙 그라탈루는 은연 중 대륙의 범주에 포함된 역사적·지리적 의미를 찾아보고 그 안에 숨겨진 문명 차별 등의 의미를 고찰했다.
“이 책의 목적은 다음과 같다. 즉 세계를 여러 부분으로 구분하는 것은 전적으로 문화의 결과이므로 세계는 전혀 다르게 구분될 수도 있었다. 따라서 그 어떤 지정학적 추론이라도 그 추론의 근거가 자연에 있다는 주장에 세계의 구분이 동원될 수 없음을 밝히는 것이다.”(15∼16쪽)
쉽게 말해 대륙은 바람이나 물, 산 같은 자연의 이름이 아니라 ‘발명된 개념’이고 어릴 때부터 학습된 결과라는 주장이다. 저자는 독자들이 이 같은 대륙 개념에 대해 스스로의 관점을 반추해보라고 부추긴다.
책은 터키를 유럽에 포함시키는 문제로 시작해 유라시아의 표류까지 수백 년 전통을 품어온 대륙의 역사를 하나하나 끄집어낸다. 대륙 구분의 역사를 풀기 위해 바로크 양식 천장 벽화와 르네상스 예술을 비롯한 도상학(圖像學) 자료는 물론 중세의 매혹적인 세계 전도들을 근거로 활용하면서 볼거리를 제공한다.
예를 들어 중세 시대 프랑스와 터키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1721년 3월 16일 터키 사절단의 파리 입성을 묘사한 판화를 제시하고, “오스만 제국(터키 제국)은 15세기 이래 유럽 국가들이 무시할 수 없는 상대였다. 사절단의 왕래가 기독교 국가들만큼 정기적이지 않았지만, 당시 외교 관행상 터키는 국제 관계에 통합되어 있었다”는 설명을 곁들였다. 역사적으로 유럽과 활발한 교류를 한 터키를 이슬람 문명이라는 이질감 때문에 고립시키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처럼 대륙이라는 개념은 유럽인들에게 편견으로 자리를 잡았는데, 책은 유럽인들이 신대륙을 발견하면서부터 대륙이 문명과 비문명을 가르는 잣대로 인식되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저자는 세계사와 문화사적 자료를 고증하고 그 안에 숨겨진 의미들을 철저하게 끄집어내고 파헤치며 자신의 주장을 이해시키고 있다. 또 당시 예술작품들이 각 대륙을 어떻게 형상화했는지를 시대별로 비교해 놓았다.
책을 읽노라면 대륙 구분에 유럽 중심의 세계관이 내재된 사실을 알게 된다. 지구는 둥근데 왜 세계지도에는 항상 유럽이 중앙에 있느냐는 것이다. 이런 세계지도를 볼 때마다 우리는 암시적으로 유럽이 세계의 중심에 있다는 고정관념에 빠질 수밖에 없는데 말이다. 수많은 예술작품들이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라는 대륙의 이름을 은유와 상징으로 병행했고, 거기에는 문명을 기준으로 미개한 땅을 가르는 차별이 끼어들었다는 것이다.
“세계 구성원인 유럽은 문명이라는 아주 고전적인 주관성에 따라 중앙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다른 대륙들은 그 주위에 동쪽으로는 아시아, 남쪽으로는 아프리카, 그리고 서쪽으로는 아메리카로 방향에 따라 분류되었고, 그 나머지는 오세아니아가 되었다.”(204쪽)
오늘날 대륙의 구분은 16세기 유럽인들의 정복의 역사로부터 상당부분 기인한다는 이야기도 눈여겨볼만 하다. 유럽인들 자신이 ‘발견된’ 사람들인 나머지 인류와 구별된다는 것이다. 안드레아 포초가 17세기말 성 이냐시오 데 로욜라 성당 중앙 홀에 그린 벽화를 이 같은 사고를 전제로 분석했는데, 다음과 같다.
“둥근 천장을 떠받치는 지주들에는 네 가지 군상이 대륙을 상징한다. 유럽은 머리에 왕관을 쓰고 손에 홀을 든 여왕으로 표현되었다. 유럽은 말 위에 앉은 채 정복당한 이단을 상징하는, 얼굴을 찌푸린 두 인물을 제압하고 있다. 아시아 역시 화려하게 차려입고 있지만 머리에 왕관이 아닌 두건 같은 것을 쓴 채 기도하는 자세로 낙타 위에 앉아 왼손을 들고 있다. 아시아가 짓밟고 있는 두 거인은 우상숭배와 종교에 대한 무지를 상징한다. 아프리카는 물론 흑인 여자인데, 아프리카를 상징하는 두 동물과 연결돼 있다. 아메리카는 넷 가운데 옷을 가장 덜 입고 있는데, 이는 미성숙한 미개성의 증거이다.”(118쪽)
이처럼 책에는 지리와 역사는 물론 문화인류사와 철학에 이르는 다양한 인문학적 접근으로 전 지구인의 뇌리에 박힌 ‘대륙’이라는 개념 속에 똬리를 틀고 있는 차별과 편견을 들추고 있다. 다만 일부 어려운 단어에서 오는 생경함과 번역체 특유의 난해함 때문인지 좀처럼 읽는 속도가 나지 않는다.
저자는 “모든 구분은 역사적이며 특히 자연에서 기원한 구분이라는 인상을 주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계는 ‘잡종’의 사회로 나가고 있는데 이런 면에서 보면 세계를 특정한 방식으로 구분하기란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김상기 기자 kitt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