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정윤희] 이야기하기 위해 살다

입력 2010-10-07 17:37


계절이 바뀌면 책장을 정리한다. 내 방에 존재하는 책들은 소설이나 시 등 문학이 대부분이고 인문서들이 그들과 어울려 있다. 이승우 소설가는 산문집 ‘소설을 살다’에서 “소설은 내가 만든 집이지만, 그래서 그렇게 허술하지만, 그러나 나를 살게 하는 집이기도 하다. 나는 내 소설 안에서, 소설과 함께 산다”라고 고백했는데, 과연 나를 살게 하는 것은 무엇이며, 나는 무엇과 함께 사는가, 라는 자문을 해본다.

우리는 무수한 이야기에 둘러싸여 산다. 하룻밤 자고 나면 밤새 일어났던 사건이나 사고들이 뉴스로 떠오르고 수많은 이야기들은 우리 귓가에 바람결처럼 스친다. ‘출판저널’에 매일 도착하는 소설, 에세이, 인문서 등 많은 신간 포장을 뜯으며 과연 이 책 속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담겨 있을지 심장이 두근거린다. 책장 한 장 한 장에 깨알 같이 담긴 글자들을 보면 멀미가 날 지경이지만 차곡차곡 쌓이는 책들을 보면서 세상은 내가 모르는 무수한 이야기들이 끊임없이 생성되는 거대한 기계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며칠 전 연락이 뜸했던 친구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이십대에 일찍 결혼해서 남부럽지 않게 잘 살고 있는 친구인데 나한테까지 연락한 것을 보면 무척 외로운 모양이다. 나는 본래 다른 이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터라 간단하게 인사를 나누고선 끊임없이 재잘거리는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남편 이야기부터 시댁 이야기, 중학생과 초등학생인 아이들 교육문제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특별한 이야기는 없었다. 우리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일상 그 자체이다.

그렇게 한참 이야기를 듣고 있는데, 갑자기 울먹거리는 목소리가 전해졌다. 우울증이라고 한다. 친구는 가깝지도 않은 나에게 자신의 몸속 바닥에 쌓인 묵은 이야기들을 꺼내놓으며 치료받고 싶었던 것이리라. 현실이 만들어낸 친구의 이야기들은 녹이 슬어 쾨쾨한 냄새가 났지만, 코를 막고 싶을 정도로 유쾌하지 않은 냄새조차도 우리 삶인 것이다.

이야기들은 비단 소설 속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었다. 두꺼운 아스팔트 틈새를 뚫고 올라오는 풀잎처럼 현실이라는 일상 속을 비집고 올라오는 희망도, 욕망도 모두 우리 삶이다. 나는 문학인의 자서전을 즐겨 읽는 편인데, 그 중 소설 ‘백년의 고독’으로 유명한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그의 자서전 ‘이야기하기 위해 살다’에서 이렇게 말했다.

“삶은 한 사람이 살았던 것 그 자체가 아니라, 현재 그 사람이 기억하고 있는 것이며, 그 삶을 얘기하기 위해 어떻게 기억하느냐 하는 것이다.”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며, 마르케스의 이야기가 다시 스친다. 바쁘다며 그 친구의 이야기와 담을 쌓을 수도 있었으나, 나는 그 친구의 치료를 도와주고 싶었다. 친구의 우울증이 내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일까. 나도 누군가에게 이야기함으로써 치유 받고 싶을 때가 있으니까. 당신도 그렇지 않은가.

정윤희 출판저널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