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심재수 (13·끝) 인간 경영-가정 화평, 새벽기도로 일궈
입력 2010-10-07 17:48
아들과 딸이 모두 대학입시에 낙방했다. 내신은 모두 하위 등급이었다. 옛날 같으면 이 책임을 모두 아내에게 전가했으리라. 왜 이 정도 성적이냐며 가족에게 상처를 주었으리라. 평소 나는 아이들에게 ‘재수 불가’를 강조해왔었다.
“재수란 있을 수 없다. 한번에 붙어라. 아버지 이름이 재수인데, 너희들까지 재수하면 되겠느냐.”
아들과 딸은 대학입시에 실패한 뒤 호된 꾸지람을 들을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의외의 부드러운 반응에 당황했다. 그때는 내 성품이 IMF라는 ‘고난의 강’을 건너 ‘신앙의 육지’에 도착한 뒤였다. 이제는 완고한 사람이 아니었다. 밖에서는 호탕하고 너그러운 ‘멋진 남자’, 집에서는 사사건건 따지는 ‘꼬장꼬장한 남자’가 아니었다.
“재수를 해라. 이번에는 기도하면서 정말 열심히 해야 한다. 그동안 너희들에게 참 미안했다. 아버지란 역할을 처음 해보아서 시행착오가 많았다. 용서해다오. 앞으로 잘 해보자.”
“예. 열심히 하겠습니다.”
아이들이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나의 고백을 받아들였다. 아이들 앞에서 이렇게 부드러운 모습은 처음이었다. 사람의 성품은 하루아침에 변하지 않는다. 성급하고 독선적인 성격이 어떻게 바뀌었는가. 역시 새벽기도 덕분이다. 어느 날 새벽기도를 드리던 중 한가지 의문이 생겼다.
“아내는 나를 만나서 행복해할까? 아이들은 아빠를 자랑스러워할까?”
대답은 ‘NO’였다. 그 순간 가족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생겼다. 가족이 나로 인해 마음의 상처를 참 많이 받았겠구나. 얼마나 미안한 일인가. 이제 내가 바뀌어야 한다. 내가 변하지 않으면 가정에 평화도 없다. 내가 먼저 마음문을 열고 생각을 바꾸자.
IMF는 내게 축복의 통로였다. 고난이 내게 유익이었다. 그 고난을 통해 ‘새벽기도형 CEO’가 되었고 가정이 회복됐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아들은 재수한 뒤 한동대학교, 딸도 나중에 재수해서 한국외국어대학교에 입학했다. 하위권 내신으로 거뜬히 대학에 들어간 것이다. 아들은 학원 수업이 끝나면 밤늦게 교회에 들러 기도할 정도로 믿음이 장성했다. 나는 ‘엄격한 아버지’의 모습을 버렸다. 왜? 자녀들도 결국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다. 부모는 청지기일 뿐이다.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에베소서 6장 4절).
자녀는 소유가 아니다. 독립된 인격체다. 자녀를 노엽게 하면 대화의 문이 막힌다. 나는 아이들에게 항상 이런 말을 들려주었다.
“엄마와 아빠를 두려워하지 마라. 엄마와 아빠는 너희들이 잘못을 속이면 그냥 넘어간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다.”
자녀는 부모를 닮는다. 설교 내용을 노트에 꼼꼼히 기록하는 아들을 보며 그저 감사할 뿐이다. 좋은 아내를 인생의 배필로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위기를 통해 좋은 회사를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차고 넘친다.
새벽은 축복의 시간이다. 하나님은 새벽에 기도하는 사람에게 아주 특별한 복을 주신다. 새벽에 기도하는 사람에게 특별한 지혜를 주신다. 새벽에 기도하는 사람에게 시련을 능히 이겨낼 특별한 힘을 주신다. 새벽에 기도하는 사람에게 삶의 활력을 주신다. 새벽이 주는 풍성한 은혜를 나는 안다. 경험을 통해 안다. 새벽기도는 경영학 교과서다. 나는 경영의 모든 것을 새벽기도에서 배웠다. 가정의 화평도 새벽기도에서 깨우쳤다. 새벽기도의 은혜가 단비처럼 내 영혼을 적신다. 새벽에 나누는 하나님과의 조용한 속삭임을 경험해보라. 그 오묘한 계시와 세미한 음성에 전율하리라.
정리=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