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년간 윤동주 시인 연구 일본인 학자 야나기하라씨 “윤동주 사상의 보편성 많은 사람들에 깊은 감명”
입력 2010-10-06 19:16
“과거 역사를 생각하면 일본인인 제가 한국의 국민 시인 윤동주에 대해 거론한다는 것은 대단히 죄송하고 가슴 아픈 일입니다.”
6일 서울 은평구 신사동 숭실고에서 열린 한일병합 100주년 특별강연에서 일본인 학자 야나기하라 야스코(64·여)씨는 일본의 한국 침략에 대한 사죄의 말을 먼저 꺼냈다.
1968년 일본 릿쿄대 사학과를 졸업한 후 20여년 동안 윤동주 시인을 연구한 야나기하라씨는 ‘시인 윤동주를 기념하는 릿쿄회’ 등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선생의 아름다운 시와 짧은 생애를 처음 접했던 순간의 고통을 잊을 수 없다”며 “훌륭한 시인의 미래를 빼앗은 일본인으로서 사죄하는 마음으로 연구 활동을 시작하게 됐다”고 밝혔다.
야나기하라씨는 윤동주 시인의 숭실학교 재학 시절과 일본 유학 당시 에피소드를 소개하며 당시 경험들이 시 속에서 어떻게 나타났는지를 설명했다. 그는 “윤동주 시인의 많은 작품들이 체포 당시 압수당해 남아 있지 않다”며 “릿쿄대 유학 시절 썼던 ‘쉽게 씌여진 시’를 통해 일본인들과의 교류 속에서 민족 문제를 이야기할 수 없었던 고독한 일면을 엿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일본 열도에서 윤동주 시인을 추모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는 이유에 대해 그는 “선생이 29세의 젊은 나이에 일본에서 옥사했다는 안타까운 사실이 일본인의 마음에 강하게 다가갔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실존주의를 바탕으로 신앙과 양심에 따라 내면과 깊이 마주한 윤동주 사상의 보편성이 많은 사람에게 깊은 감명과 공감을 준 것”이라며 “아시아에서 일본에 피해를 당한 분들의 슬픔과 고통을 대표하는 형태의 하나로 윤동주 시인의 죽음과 시가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야나기하라씨는 앞으로 윤동주 시인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을 밝히는 데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윤동주 시인의 사망 원인에 대해 아직까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일본군의 인체실험에 의해 희생됐다는 설이 꾸준히 제기됐다. 그는 “문서 보존기간이 지나 후쿠오카 형무소 수감 당시 자료를 찾기가 어려운 상황”이라면서도 “내가 조사해 밝혀내는 아주 작은 사실로부터 큰 진실에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확고한 의지를 보였다.
시인 윤동주를 알기 전부터 한국 문화를 좋아했었다는 야나기하라씨는 “저는 욘사마가 아닌 윤사마의 골수팬입니다”라고 서툰 한국어로 말하기도 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