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기자, 아이티 교회 복구 망치 들다
입력 2010-10-06 17:43
한국교회희망봉사단과 함께하는 회복
은색 양철지붕 씌워지자 환호… 눈물
아이티 대지진 발생 7개월 만인 지난 8월 21일은 지진으로 무너져 내린 엘루넷교회의 지붕이 올라가는 날이었다. 많은 교인과 주민들이 아침 일찍부터 교회로 모여들어 기대에 찬 눈으로 지붕이 올라가길 기다렸다. 엘루넷교회는 아이티 수도 포르토프랭스 빈민지역 시티솔레에 위치한 작은 교회다.
한국교회희망봉사단과 캐나다 한인선교단체인 GAP (Global Assistance Partners)가 진행해온 교회재건 대상 교회 중 처음으로 재건을 마친 것. 교회재건 사업에는 7000달러가 지원됐다. 이동열 선교사는 “직접 건설을 해 주는 것이 아니라 자재를 살 수 있는 돈만 지급하고 교인들 스스로 교회를 재건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힘 모아 다시 세운 교회
봉사단과 기자 일행이 차에서 내리자 교회 앞에 모여 있던 아이들이 커다란 눈을 깜빡이며 신기한 듯 따라붙었다. 몇몇 개구쟁이는 카메라 렌즈 앞에 얼굴을 들이대며 손으로 ‘브이(V)’자를 그려 보였다. 사진기자의 손가락이 경쾌한 셔터 파열음을 내면 우르르 몰려와 제 얼굴을 확인하곤 했다. 기자가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은 사랑에 굶주린 듯했다. 처음 보는 사람의 손을 잡고 안아달라고 졸랐다. 그런 아이의 고사리 손을 잡고 교회 문 앞으로 갔다. 문 앞에는 약 30㎝ 폭의 개울이 흐르고 있었다. 개울에 다가서자마자 숨을 쉴 수 없을 정도의 악취가 코를 찔렀다. “오물, 쓰레기 등 온갖 더러운 게 섞여 있으니 절대 빠지면 안 됩니다”라고 동행한 이인수(41) 선교사가 웃으며 말했다. 이 선교사를 따라 모두 개울을 폴짝폴짝 뛰어 넘어 예배당 안으로 들어갔다.
가장 먼저 한 일은 교회 벽 세우기였다. 30여명의 교인이 줄지어 서 회색 벽돌을 열심히 날랐다. 아이티 사람들은 음악을 좋아한다. 몇 사람이 모인 자리에선 으레 합창이 흘러나오곤 한다. 벽돌을 나를 때 역시 그들은 흥겨운 아카펠라로 분위기를 북돋웠다. 섭씨 37도에 육박하는 더운 날씨지만 절로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또 다른 교인들은 벽돌을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쌓았다. 삐뚤빼뚤 했지만 이 교회 엘루넷 플로랑(40) 목사와 교인들은 자랑스러워했다. 전문가를 고용하면 훨씬 정교하고 빠르게 일이 진행될 수 있지만 지진 이후 교회에는 경제적 능력이 없었다.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 교인들이 몸소 나선 것이다. 한 교인은 “못이 여기저기 튀어나와 있지만 우리 힘으로 직접 교회를 세우는 게 기쁩니다”라고 말했다. 엘루넷 목사는 “외부 지원 단체의 지원만으로 이뤄진 게 아니라 우리 작은 힘을 합쳤다는 게 중요합니다”라며 눈물을 닦아냈다.
건물 외형 작업의 마지막은 양철지붕을 올리는 것이었다. 엘루넷 목사와 함께 못과 망치를 들고 조심스럽게 사다리를 올랐다. 사다리에는 이리저리 금이 가 있어 위태로웠다. 사다리 밑에서 잡고 있던 교인이 “걱정 말고 못질 하세요”라고 외쳤다. 그를 믿고 쿵쾅쿵쾅 못을 박기 시작했다.
지붕과 나무 기둥에 연달아 못을 박던 엘루넷 목사가 말했다. “이건 정말 기적입니다.” 벽돌 하나 남지 않았을 정도로 폐허였던 곳에 다시 교회가 세워지는 감격에서 그는 한참을 헤어나지 못했다.
지진 당시 교회는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지진 당시 엘루넷 목사는 예배당 안에서 아내와 함께 기도하고 있었다. 아내를 데리고 황급히 밖으로 나오던 순간 벽이 무너지면서 아내를 잃었다. 집에서 놀고 있던 하나뿐인 아들은 당시 머리를 크게 다친 후 아직도 몸을 가누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엘루넷 목사는 아내가 숨을 거둔 바로 그곳에 하나님의 성전을 다시 세웠다. “매일 하나님께 하루빨리 교회를 지을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는 흐르는 눈물 때문에 망치질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는 “성전 재건 시작 때부터 이어진 힘들었던 과거가 눈앞을 스치고 하나님의 무한한 영광이 느껴져 감격스럽습니다”라고 말했다.
역경을 이기고 우뚝 선 양철지붕
열심히 못질을 하고 있을 때 건장한 체구의 청년 3∼4명이 어슬렁어슬렁 들어왔다. 엘루넷 목사는 반가운 얼굴로 그들을 맞았다. 매우 친해보였다.
처음부터 좋은 인연은 아니었다. 이들은 이 지역 시티솔레 갱단 소속 갱이었다. 엘루넷 목사는 “처음엔 밤에 건축 자재를 훔쳐갔고, 이후 교인을 협박해 돈을 훔치고 공사를 방해했다”고 말했다. 청년들은 부끄러웠는지 서로를 쳐다보며 웃었다.
여러 차례 공격을 당한 뒤 가슴에 총을 품고 있는 갱들 앞에 엘루넷 목사가 나섰다. 그는 담대하게 “이곳은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당신들이 와서 계속 방해한다면 하나님께서 용서하지 않을 겁니다”고 말했다. 엘루넷 목사의 용기 있는 행동 이후 갱의 출현은 줄었다. 친구가 됐다. 공사할 때 경호원 역할을 해주기도 했다. 엘루넷 목사는 “사실 겁이 많이 났죠. 하지만 하나님만 믿고 용기 낸 겁니다”고 말했다.
이날 올라간 은색 찬란한 양철지붕은 단순한 지붕이 아니었다. 아내의 죽음과 아들의 중상, 턱없이 부족한 건축 비용, 갱단의 방해와 핍박을 모두 이겨낸 결과였기 때문이다.
양철지붕이 늠름한 위용을 뽐내며 고정되자 교회 안에 들어와 있던 교인, 동네 주민과 아이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눈물을 흘리는 교인도 눈에 띄었다. 기쁨의 찬양을 한목소리로 외쳤다. 봉사단의 원조와 교인의 힘이 모여 첫 성전이 재건되자 과정을 쭉 지켜봐왔던 이동열 선교사도 감격에 겨워 읊조렸다. “이래서 내가 봉사를 못 끊어….”
포르토프랭스(아이티)=글 조국현 기자·사진 김지훈 기자 joj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