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정진영] 금요일 밤이 기다려지는 이유
입력 2010-10-06 21:23
“노래 하나로 현실을 딛고 일어서려는 그들을 보는 즐거움 있다”
지난달 초부터, 은근히 금요일 밤이 기다려진다. 주말 밤이란 느긋함도 있지만 그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TV프로그램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귀가가 늦을 때를 제외하고는 밤 11시면 어김없이 한 음악전문 케이블 TV 생방송 프로그램인 ‘슈퍼스타K 2’에 채널을 고정한다.
이 프로그램을 처음 접했을 때는 별 관심이 없었다.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가수 지망생들이 노래실력을 겨루고 이 중 1명을 최종 선발해 가수로 육성하는 ‘오디션 서바이벌 리얼리티’는 내 관심사 밖이었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 빠져들기 시작했다. 처음에 생각했던 흔한 오디션 프로그램 중의 하나가 아니었다.
내가 ‘슈퍼스타K 2’에 꽂힌 이유는 우선 참가자들의 노래 실력이 빼어나서다. 최종 11명을 가리기 직전 마지막 예선과 그 이후 결선 진출자들이 지난 9월 초 이후 매주 금요일마다 부른 노래는 탁월했다. 서늘한 감동이 밀려온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심사위원인 가수 엄정화는 몰입하고 들으며 눈가를 적시기도 했다. 특별 심사위원이었던 가수 이문세는 ‘내 노래를 나보다 더 잘한다’고 극찬했다. 그들의 ‘스토리텔링’ 역시 진한 울림을 주고 있다. 어릴 때부터 조여왔던 경제적 고통에서 자립하려는 과정, 헤어진 부모를 찾기 위해 애쓰는 안타까움, 학교에 적응하지 못했던 왕따가 겪었던 고통 등을 음악으로 극복하려 했던 이들의 이야기는 애잔함과 감동을 동시에 자아냈다.
지금은 개천에 있지만 언젠가는 용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해 준다는 점 역시 빠뜨릴 수 없는 프로그램의 매력이다. 없는 집에서 태어나 힘들더라도 노래 하나만 잘하면 얼마든지 가수가 돼 한 계단 올라설 수 있다는 ‘꿈’을 꿀 수 있게 하고 있다. ‘슈퍼스타K 2’는 성공을 위해 구슬땀 흘리는 그들에게 대리만족을 느끼며 그들이 웃으면 같이 웃고, 울면 같이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다. 비교적 공정한 심사도 프로그램을 든든하게 지탱하는 이유다. 심사위원 점수와 실시간 시청자 투표, 온라인 투표를 합산해 승자를 결정하는 방식이기에 어느 정도 공정성을 담보했다고 할 수 있다.
이유야 뭐든 지금 대한민국에는 ‘슈퍼스타K 2’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지난 7월부터 시작된 국내 및 미국 LA예선에는 단일 방송 프로그램 사상 최대인 무려 134만여명이 참가했다. 생방송 시청률은 같은 시간대 KBS MBC SBS를 뛰어넘은 것은 물론 케이블 TV 최고 시청률도 경신했다. 지상파인 MBC는 자존심을 버리고 ‘스타오디션-위대한 탄생’이란 ‘유사 프로그램’을 편성하기도 했다. 방송이 있는 금요일 밤이면 인터넷 게시판엔 수천건의 글이 올라오고, 관련 검색어 순위는 1위를 차지하곤 한다. 이 프로그램을 소재로 한 영화도 준비 중이다. 가히 ‘슈퍼스타K 2’ 신드롬인 셈이다.
지나친 상업성 등 프로그램의 폐해와 문제점을 성토하는 목소리도 높다. 특히 화면 곳곳에 수시로 노출되는 간접광고 등 과도한 상술은 음악프로그램 본질을 훼손한다는 지적을 받을 정도다. 참가자들의 에피소드마저 노이즈마케팅으로 활용한다거나, 결선 심사 과정에서 일부 시청자들이 특정 참가자를 몰아주기 위해 무더기 온라인 투표를 한 사실이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다. 134만명 대 1의 경쟁을 뚫고 승자가 독식하는 방식 자체가 문제라고 질타하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스타 브로커’ ‘잔인한 학예회’라고 폄하하기도 한다.
11월에 최종 1인이 결정된다고 하니 앞으로 대 여섯 번 정도 방송이 남았다. 방송 때마다 이런저런 이슈가 생산될 것이 뻔하다. 탈락하는 사람은 그 사람대로, 올라가는 사람은 또 그 사람대로 다양한 에피소드가 만들어진다. 그러나 누가 떨어지고. 누가 살아남든 나는 개의치 않는다. 다만 끝까지 시청자로서 즐길 뿐이다. 내가 응원했던 친구는 이미 마지막 예선에서 탈락했다. 충남 아산 출신의 21세 여대생 김보경. 그가 방송 내내 네티즌으로부터 ‘안티’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김그림과 함께 불렀던 캘리 클락슨의 ‘Because of You’가 듣고 싶다.
정진영 카피리더 jy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