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 신학강좌] 성경은 무엇인가
입력 2010-10-06 17:29
(13) 한글 성경 출간
예부터 우리나라는 동방예의지국, 백의민족, 배달겨레 등으로 불려왔다. 우리 조상들은 물 맑고 산 좋은 금수강산에 살면서 흰옷을 즐겨 입고 예의범절을 올바르게 지키면서 멋지고 착하게 살아왔다.
그러면 이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 누가, 언제 기독교 복음을 전했던 것일까? 어떤 사람은 경주 부근에서 출토된 돌 십자가와 마리아상에 근거하여 신라시대에 네스토리안(Nestorian) 계통의 기독교(경교)가 이미 들어 왔었다고 말한다. 임진왜란 때 고니시 유키나가 휘하의 종군신부였던 세스페데스(G Cespedes)나 혹은 표류하다 제주도에서 붙잡혀 14년 동안 억류생활을 했던 하멜(H Hamel) 일행에 의해 소개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실제로 한반도에 맨 처음 십자가를 세웠던 것은 천주교였다. 그 무렵 중국에는 이미 예수회 소속 마태오 리치(M Ricci) 신부에 의해 들여온 천주교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당시 중국을 빈번히 왕래하던 몇몇 조선인들은 자연히 천주교를 접하게 되었고, 이승훈 김대건이 각기 영세와 신부 서품을 받으면서 마침내 한국 천주교는 본격적인 선교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1885년 4월 5일은 한국 개신교의 시작을 알리는 기념비적인 날이었다. 이 부활절 아침 유난히 파란 눈을 가진 두 젊은 선교사 언더우드(H G Underwood)와 아펜젤러(H G Appenzeller)는 그동안 굳게 닫혀 있었던 한국 선교의 문을 열면서 의료와 구제, 교육 사업 등을 활발히 전개시켜 나갔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두 선교사가 심혈을 기울여 중점적으로 추진한 것은 성경을 번역하는 일이었다. 그 이유는 오직 성경만이 영혼을 구원하고 교회를 부흥시킬 수 있는 유일한 도구요 효과적인 수단으로 여겼기 때문이었다. 물론 선교 초창기에도 한문 성경을 비롯하여 로스역이나 이수정역 등이 있었지만 대부분 중역이거나 의미가 불분명해서 좀 더 원문에 근거한 정확한 번역 성경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었다.
언더우드는 서둘러 번역위원회를 구성하여(1887년 2월) 자신이 직접 위원장이 되었고, 번역에 착수한 지 14년 만에 마침내 신구약 성경이 빛을 보게 되었다. 특히 언더우드는 신(神)의 이름을 ‘천주’(天主) ‘상제’(上帝) 등으로 정하자고 했을 때 강력히 ‘하나님’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편 아펜젤러도 성경 번역에 혼신의 힘과 열정을 쏟아 부었다. 그는 신변보호 문제로 잠시 나가사키에 가 있을 때에도 열심히 한국어를 배워 직접 설교하거나 번역할 정도의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는 어학 공부와 성경 번역에 지나치게 체력을 많이 소모함으로써 크게 건강을 해쳐 9개월 동안 휴식을 취해야만 했다. 그는 목포에서 열리는 번역위원회에 참석하러 가다가 파선되어 45세의 젊은 나이에 순교하고 말았다.
그 후에도 성경 번역은 꾸준히 계속되어 개역성서(1937년), 공동번역(1977년), 새번역(1991년), 표준새번역(1993), 개역개정판(1998) 등이 차례로 출간되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원문의 의미가 우리말로 정확하게 옮겨지지 못하고 여전히 애매하거나 오역된 부분이 상당수 남아 있는 것은 실로 안타깝고도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원문에 충실하면서도 이해하기 쉬운 성경 번역, 그것은 한국교회가 시급히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필수 과제다.
고영민 총장 (백석문화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