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심재수 (12) 믿음 생활이 회사·가정·인생을 바꾸었다

입력 2010-10-06 17:44


장모님은 나를 몸이 아프거나 심신이 나약한 청년으로 오해했다. 병원에 가서 종합검진을 받아보니 B형 간염이었다. 의사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중얼거렸다.

“아주 특이한 경우입니다. B형 간염이 자연스럽게 나았어요.”

“그래요? 하나님이 치료해주신 것입니다.”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이 나왔다. 교회에 출석한 지 채 1년도 안 된 초보신자가 ‘하나님의 은혜’를 운운한 것이다. 더군다나 교회에 나오는 이유가 무엇인가. 믿음 때문인가? 열성 때문인가? 구원의 확신 때문인가? 아니다. 한 여인으로부터 사랑을 얻기 위한 행위일 뿐이다.

“예수를 믿는 사람에게는 종종 기적이 나타납니다.”

의사는 나를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생각했다.

1985년 5월, 우리는 결혼식을 올렸다. 만난 지 1년만이었다. 처가로서는 첫 결혼식이었다. 나중에는 결혼을 그토록 반대했던 장모님이 오히려 감사의 뜻을 밝혔다.

“정말 고맙네. 자녀들을 붙잡고 있는 것이 능사가 아니란 것을 깨달았네. 자네가 아니었으면 모든 자녀들이 혼기를 놓쳤을 거야. 자네가 우리 아이들을 결혼시킨 1등 공신이야.”

아내 덕분에 신앙을 갖게 됐으니 참 감사하다. 기업을 경영하는 모든 노하우도 성경에서 배웠다. 하나님은 필요한 때 적절한 말씀과 깨달음으로 앞길을 인도하셨다. 짧은 신앙 연륜에 안수집사가 된 것도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다. 나는 항상 예배시작 30분 전 예배당에 도착한다. 준비 기도를 드릴 때마다 하염없이 눈물이 난다. 하나님의 은혜가 새록새록 떠오른다. 영혼이 감동된 상태에서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면 모두 은혜가 된다. 설교를 잘하고 못하고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모든 말씀이 꿀처럼 달콤하다. 굶주린 자는 반찬투정을 하지 않는다. 영혼이 굶주린 자는 설교를 분석하지 않는다. 가끔 교회봉사를 하느라 예배를 못 드린 사람들의 고백을 듣는다.

“아이고, 오늘 봉사하느라 예배도 못 드렸네.” 이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예배가 죽으면 신앙생활도 힘이 없다. 예배가 봉사보다 우선되어야 한다. 선교국 서기로 봉사할 때 그런 기분을 느꼈다. 주일이면 너무 바빴다. 사람들의 생각도 각양각색이었다. 피곤했다. 나는 담당 목사님에게 메일을 보냈다.

“아무래도 제게 맞지 않습니다. 생각도 서로 다릅니다.”

목사님의 답변은 간단했다.

“이제 아셨나요?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신앙을 갖고 임하세요. 봉사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시키시는 겁니다. 내가 무엇을 하려고 몸부림치니까 힘이 드는 것입니다.”

나는 교회 선교국 시스템을 회사의 행정 시스템과 유사하게 바꾸었다. 기본과 원칙에 충실한 제도였다. 지금 회사의 시스템은 거의 완벽하다. 지난해 우리 회사는 불법 소프트웨어를 단 한 건도 사용하지 않은 우량회사로 선정돼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표창을 받았을 정도다. 교회 행정도 그런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앞장섰다. 그 모든 봉사를 마치고 나서 안수집사 직분을 받았다. 아주 짧은 기간에 생각지도 않았던 직분을 받게 된 것이다.

예수를 믿지 않았으면 가정생활도 실패했을 것이다. 새벽기도를 드리지 않았으면 부부화합도 어려웠을 것이다. 나는 아주 엄하고 보수적인 남자였다. 아내와 자녀들에게도 숱한 상처를 주었다. 내가 가장 즐겨 사용한 말이 ‘역할 분담’과 ‘약속’이었다.

“나는 가장으로서 돈을 번다, 당신은 완벽하게 살림을 하라. 자녀들을 제대로 키워내라. 그것이 당신 책임이다. 약속하라.”

이 무슨 해괴한 논리인가. 자녀는 부부가 함께 키우는 것이다. 어찌 아내만의 책임인가. 약속 시간이 5분만 늦어도 펄쩍 뛰었다. 약속은 곧 생명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내 스스로는 1등 남편, 1등 아빠라고 생각했다. 이것이 얼마나 무서운 착각인지를 곧 알게 됐다.

정리=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