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선 약사의 미아리서신] 최씨 아저씨, 이제는 그 무거운 짐 내려 놓으세요
입력 2010-10-06 17:27
최씨 아저씨 이야기를 좀 더 하고자 합니다.
집주인이 아저씨에게 나가달라는 요구를 하였다는 이야기까지 제가 전해 드렸지요. 잦은 음주와 여러 가지 사건으로 인해 불편했던 집주인은 전세금 150만원을 돌려주려고 했고, 아저씨는 받지 않겠다고 하여 동네가 시끄러웠습니다. 사실 그 돈으로는 어디서도 전세방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결국 경찰까지 출동하여 그 사태가 진정 되었답니다.
전세 기한이 수년이나 지났고 얼마 전부터 나가달라는 이야기를 계속 해 왔던 집주인의 요구는 정당했습니다. 그러나 집주인 얘기도, 경찰 아저씨의 얘기에도 불구하고 아저씨는 하염없이 성질을 내면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난 나갈 수가 없어. 갈 데가 없어. 어쩌란 말이야.” 아저씨의 울부짖음은 수년이 지난 지금도 제 귀를 울리고 있습니다.
그렇게 아저씨는 동네를 떠나갔습니다. 어디로 가는지 물어보는 동네사람도 없었고 붙잡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아저씨가 이사를 어디로 가는지 궁금하였으나 물어볼 수는 없었습니다. 가끔 아저씨 생각을 했으나 그 소식을 알아보려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아저씨가 약국에 들렀습니다. 더 희어진 머리칼과 성한 치아를 찾기 힘든 잇몸 상태가 아저씨의 그간 시간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약사 양반. 오랜만이지? 나 이렇게 죽지 않고 살아 있어 하하하.”
호탕하게 웃으시는 아저씨에게서 허한 기운을 읽어낼 수 있었습니다. 저의 무력함을 새삼 느꼈습니다. 그는 함께 노숙을 하는 아저씨들과 피로회복제를 마시기 위해 약국에 들르셨지요. 수중에 돈이 없는 아저씨에게 몇 병의 약을 드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약을 받아든 아저씨는 무척이나 행복해하셨으니까요. “거봐, 약사 양반하구 나하고 친구사이라니까, 이정도 쯤이야 우습지 뭐. 그렇지? 약사친구.” 하면서 함께 온 친구들에게 자랑하며 일일이 병을 따서 사람들에게 주었습니다. 다들 어쩔 줄 몰라 하면서 회복제를 받아 마시며 아저씨가 대단하다는 눈짓을 나누더군요.
아저씨를 아직도 얽어매는 무거운 짐을 이제는 내려놓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아저씨를 만난 이래 십수 년 만에 처음으로 하였습니다. 아저씨가 육십 평생을 살아오면서 만났던 그 많은 분함과 억울함의 시작이 어디인지 저는 알 수는 없었습니다. 아저씨가 오래전 제게 하셨던 아내와 아들이야기, 사소한 일에도 시비를 걸어오는 사람들…그 무엇보다 가장 큰 것은 자신의 진심을 몰라주는 세상일 것입니다.
아저씨가 혼자 지고 가기에는 너무 무거운 짐이라는 사실을 아저씨도 아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저씨가 스스로 지고 있는 멍에에서 벗어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자신의 멍에가 세상에서 제일 무겁다고 생각하며 자학하거나 불평하면서 기나긴 삶의 자락을 이어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저기서 저렇게 두 팔을 벌리시고 아저씨를 기다리고 계시는데, 혹시 당신의 눈에도 보이시나요. 이리로 오라고 내 멍에와 내 짐은 가볍다고, 나처럼 이렇게 해보라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듯이 예수님의 짐은 결코 가볍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제자에 의해 고발당할 것을 알고 계셨고, 십자가에 매달려 온 몸의 피를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다 흘리고 죽어야만 하는 자신의 운명이 예수님께는 얼마나 무거운 짐이었을까요.
아저씨께 남아있는 삶이 얼마인지 제가 알 수는 없으나 이제는 그 무거움으로부터 자유로워져 예수 안에서 평안한 삶을 누렸으면 좋겠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이 등을 돌린다 해도 당신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하나님의 아들인지, 예수의 영광스러움과 따스함이 아저씨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하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