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으로 본 기독교 100년] 예수셩교젼셔(심양 : 문광셔원 1887)
입력 2010-10-06 17:26
이 책은 스코틀랜드 목사인 존 로스(1842∼1915)의 주도로 이루어진 최초의 한글 번역 신약전서이다. 로스는 중국에 선교사로 왔다가 1873년 만주에서 한국 상인들을 만난 후 선교의 미개척지인 한국 선교를 결심하였다. 1866년 영국 선교사 토마스가 미국 상선 셔먼호에 타고 대동강을 건너 복음을 전파하려다가 순교한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한국에 대한 그의 관심은 더욱 깊어졌다. 신미양요 직후여서 ‘외국과의 화친은 매국행위’였다.
이런 살벌한 상황에서 로스는 근본적인 선교 대책의 하나로 한국어를 배워 그들과 함께 성경 번역을 하려고 한국인 선생을 찾아 나섰다. 마침 장사차 압록강을 건너가던 중 배가 전복되어 장사물품을 모두 잃어버려 절박한 상황에 처하게 된 한국 청년 이응찬을 만나, 개인 교사로 삼고 한국어를 집중적으로 배우며 그와 함께 성경 번역 사업을 진행하게 되었다. 다음 해인 1875년 동향 의주에서 찾아온 청년 백홍준 이성하 김진기 등도 이 번역 작업에 동참하게 되었고, 동료 선교사 매킨타이어도 함께하였다. 또한 만주에 홍삼 장사차 왔던 서상륜은 장티푸스에 걸려 사경을 헤매다 매킨타이어의 주선으로 서양 의사에게 치료받아 살아난 후 번역 원고의 교정과 인쇄 작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이미 중국어와 유학 경전을 공부하고 온 로스는 한국어를 열성적으로 배워 3년 후인 1877년에는 영어권 최초의 한국어 교본(‘Corean Primer’)을 저술할 정도로 한국어 실력이 놀랍게 발전하였다. 성경 번역 작업도 박차가 가해져 첫 번째 작업으로 1882년 ‘예수셩교누가복음젼셔’를 번역·간행했으니 낱권 성서로는 한국 최초가 된다. 같은 해 요한복음, 다음 해 마가복음과 마태복음, 1884년에는 사도행전, 1885년 로마인서, 고린도전후서 등이 간행되고 1887년 신약 전체에 해당하는 합본 ‘예수셩교젼셔’가 선양의 문광셔원에서 활판본으로 나온 것이다.
번역 작업은 한국인 번역자들이 한문 성경을 한글로 옮기면 그것을 로스가 그리스어 성경 원문과 비교하여 고쳐 나가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의주 청년들이 중심이 되었기 때문에 의주 사투리가 성경 본문에 많이 배어 있지만 우리말 고유어를 찾아 순한글로 번역한 것은 그 의의가 크다. 특히 유일신(God)에 대한 호칭을 한문 성경에 나오는 상제(上帝)나 천주(天主)로 하지 않고 ‘하나님’으로 한 것은 이후의 성경 번역에서 중요한 방향 제시를 해준 것으로 생각된다.
한국인 번역자들은 복음의 선구자로서 한글 성경을 들고 고향으로 가서 전도에 힘썼는데, 백홍준은 개신교 최초의 순교자가 되었다. 서상륜은 평안도에서 전도하다가 박해를 피해 황해도 소래로 내려와 동생 서경조와 함께 예배모임을 결성하였다. 그리고 서울로 와서 선교사 언더우드를 만나 의주와 소래 출신의 교인을 중심으로 1887년 9월 서울 정동에서 최초의 조직 교회를 설립했는데, 이것이 현재의 새문안교회이다.
‘예수셩교젼셔’가 나온 이후 국내에서도 다양한 성경 번역·간행이 이어졌다. 당시에는 외판원처럼 돌아다니며 성경을 팔고 전도하는 권서(勸書)들이 있었다. 그 결과 복음 전파와 함께 한글 보급이 급속도로 늘어났다. 이에 따라 언어생활에서 언문일치가 시작되었고 국문학 발달의 계기가 되었다. 또한 민족정신을 불러일으키고 양반·상민의 차별이 없어지는 데 기여했으며 여성들의 권익 향상에도 공헌하였다.
부길만 교수(동원대 출판광고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