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정의 바둑이야기] 승부의 무게감

입력 2010-10-06 18:01


프로 바둑에서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흔히 18급 바둑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이었다. 제4기 지지옥션배 여류 대 시니어 연승대항전 제17국. 여류팀이 5대 3으로 앞서 있는 상황이었다.

여류팀에는 이번 광저우 아시안게임 국가대표 김윤영 초단이 출격했고, 시니어팀은 지난 3기에서 6연승을 거두며 시니어 팀을 우승으로 이끈 안관욱 8단이 3연승에 도전하는 한 판이었다.

차분하게 긴 승부로 이어진 바둑은 아주 미세했다. 하지만 미세하나마 김윤영 초단이 두터운 바둑이었다. 끝내기가 정리되고 공배를 메우는 과정이었다. 공배를 메우고 계가만 하면 김윤영 초단의 반집승리. 여류 팀의 승리였다. 하지만 공배를 메우고 계가를 하니 결과는 안관욱 8단의 반집승이었다. 모두들 눈을 의심했다. 하지만 두 기사는 간단한 국후 소감을 나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니어팀의 승리를 전하고 생방송이 끝나자 스튜디오 전화에 불이 나기 시작했다. 승패가 뒤바뀌었다는 전화였다. 대국장을 나온 대국자들과 PD, 해설자들, 기자들이 모여 테이프를 돌려보았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백을 쥐었던 안관욱 8단의 돌들이 단수가 되어 있었다. 그것은 옥집이었다. 공배가 메워지고 백은 당연히 그곳을 연결하고 바둑은 마무리가 되었어야 한다.

그 순간 두 대국자는 귀신에 홀렸다고 해야 할까? 안관욱 8단은 단수를 보지 못하고 연결하지 않았고, 김윤영 초단은 그 돌들을 때려내지 않았다. 그리고 그대로 그 자리는 집으로 인정되어 계가를 한 것이다. 한국기원 규정집을 확인하고 이사회의 의견을 모아 이 바둑은 ‘즉시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음’으로 백의 반집승으로 끝이 났다. 계가를 하고 돌을 걷기 전 이의를 제기했다면 확인 절차를 거쳐 흑의 반집승일 수 있었을 것이다.

안관욱 8단은 3연승이 되었고 다음날 바로 18번째 대결이 이어졌다. 그리고 김혜민 5단을 꺾고 4연승을 이어갔다. 순식간에 대항전의 흐름은 시니어팀에게 넘어갔다. 그 시합이 끝나고 바둑 관련 인터넷 게시판에는 수백 개의 댓글이 달렸다. 프로 자질에 대한 거론과 불명확한 규정 등 수없는 악성 댓글이 이어졌다. 그리고 한 주가 지나 19번째 대결에서 안관욱 8단은 한국기원에 기권을 통보했다.

정말 프로바둑에 일어났다고 믿기 어려운 일일 수 있다. 하지만 그 대국 당사자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그들이 싸워야했던 승부의 무게감은 어느 정도였을까? 1, 2초 시간에 쫓기면서 가슴 터질 듯한 승부를 해본 사람들은 안다. 그 승부의 중압감을 극복하고자 얼마나 많이 스스로를 다잡고 다그쳐야 하는지. 얼마나 많이 말도 안되는 승리를 놓쳐봐야 하는지.

<프로 2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