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명여대 ROTC 준비 동아리 훈련부장 우찬송씨 “예수 리더십으로 장군 될래요”

입력 2010-10-06 17:24


깔끔한 제복과 007가방, 베레모는 남자 대학생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다. 지난 50년 동안 그랬다. 사관학교가 여성에게 문을 개방한 지도 십수 년이 지났지만 학군단(ROTC)만큼은 ‘금녀(禁女) 공간’을 사수하고 있다.

그러나 그 ‘반쪽 제복’의 풍경도 이제 추억의 앨범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국방부가 내년부터 여대생들에게도 문호를 개방하면서 그 첫 학교로 숙명여대를 선정했기 때문이다. 새해 봄엔 여대 중 유일하게 이 학교에서 단복을 입은 장교 후보생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됐다. 이 학교 순헌관(본관)엔 ‘경축 여성 1호 ROTC 대학 선정’이라고 적힌 플래카드가 걸려있다. 7대 1의 경쟁률을 뚫었다.

운이 좋아서 선정된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6년 전부터 여군장교준비동아리를 만드는 등 남다른 정성을 쏟았다. 또한 육군사관학교와 함께 전국안보토론회를 공동으로 주최하기도 했다. 군을 사랑하는 정신도 특별했다. 이경숙 전 총장도 그랬고 한영실 현 총장도 마찬가지다. 특히 한 총장은 2년 전 취임사에서 아예 못 박았다. “축구하고 군대 가는 여대생을 만들겠다”고 선언한 것. ‘조신하고 정숙한 학교 이미지에 군복을 입히겠다고?’ 당시 많은 이들은 고개를 갸우뚱했었다.

마침내 지난달 14일 정부는 숙명여대에 깃발을 건넸다. 그날부터 청파동 교정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아침마다 긴 머리를 질끈 묶고 모자를 쿡 눌러 쓴 학생들의 뜀박질과 구호 소리가 시끌벅적하다.

“하나 둘 셋 넷! 하나 둘 셋 넷!” 팔굽혀 펴기와 군대 유격훈련 PT체조를 하는 모습이 좀 어색해 보이지만 정신만큼은 야무지고 강해 보였다. 조금이라도 흐트러지거나 힘든 기색이 나오면 불호령이 떨어진다.

“목소리 이것밖에 안 나옵니까?” 동아리 훈련부장 우찬송(20·인천 온누리교회)씨가 목청을 높인다. 학군단에서 파견 나온 여군 조교처럼 보이지만 그도 ROTC를 꿈꾸는 체육교육과 2학년이다. 동아리 회원들과 마찬가지로 뛰고 달린다.

그는 어릴 때부터 별을 다는 꿈을 꿨다. 군복을 입은 사람을 보면 왠지 힘이 절로 났다. 중령으로 예편한 큰아버지로부터 강인한 정신력을 배웠다. 여성의 섬세함으로 정보와 심리전에서 빛을 발할 포부를 가지고 있다. 전투병으로 시작해 장군이 되는 게 목표다. “별은 달 수 있는 만큼 달고 싶어요. 부드럽고 강한 참 군인이 되고 싶어요.” 우씨는 고등학교 땐 사관학교에 갈 생각도 했었다. 그러나 환경과 형편이 허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가슴에 새긴 꿈은 언제나 잊지 않고 기도하며 살았다.

“체육교사나 학사장교가 되기 위해 체육교육과를 선택했는데 이렇게 좋은 기회가 찾아왔어요. 여성 첫 ROTC라는 영광의 선물이 눈앞에 있다고 생각하니 기쁘고 감사해요.” 우씨는 “군인은 거의 남성들인데 그들에게 지지 않을 정도의 리더십과 자신감 열정 등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회원들 중에는 학사장교를 준비하는 학생들도 있기 때문에 3, 4학년도 많다. 하지만 우씨는 선배라고 해서 봐주지 않는다. 깍듯하게 경어를 쓰지만 지시와 명령은 단호하다. 힘이 들어 목소리가 기어들어갈 때마다 배에 힘을 주고 사기를 올리는 구령을 외친다. 그럴 때마다 회원들은 확성기 소리처럼 ‘숙명 파이팅’으로 화답한다.

우씨는 홀로 가는 길이 아니라 동료들과 함께하기 때문에 즐겁다고 했다. 동아리 회원 수도 50여명으로 크게 늘었다. 아침 훈련은 7시30분부터 1시간 동안 실시된다. 야외 원형 극장에서 준비체조를 시작으로 본관을 중심으로 400m 정도 교정을 열 바퀴 돈다. 정문에서 보면 5시와 7시 방향 위쪽이 가파른 언덕배기다. 남학생도 달리기가 쉽지 않은 굴곡의 교정 지형에 온몸이 땀방울로 젖는다.

이어 체육관에서 마무리 운동을 마치면 각자 첫 강의실을 찾아 쏜살같이 달린다. 동아리방 한쪽 벽에는 ‘지각 5분당 2000원+팔굽혀펴기 20회’라는 엄격한 규칙이 적혀있다. 제복의 매력 때문에 들어오는 학생 중 일부는 강도 높은 훈련과 회칙을 보고 지레 겁을 먹고 돌아서기도 한다.

“한 달이라는 시간이 정말 정신없이 지나간 것 같습니다. 일단 체력이 많이 좋아졌어요. 아침잠이 많았는데 이젠 새벽형 인간으로 바뀌었어요.”

우씨는 “21세기 전쟁에서는 심리전과 정보전이 그 어느 때보다 큰 비중을 차지할 것”이라며 “이는 남성보다 여성의 섬세한 감성이 비교우위를 가질 수 있는 분야”라고 강조했다. 그는 여성의 군 진출이 전력 상승의 계기가 될 것이라고 나름의 분석을 했다.

그러나 우씨는 최근 언론에 노출되면서 악성 댓글 때문에 회원들의 사기가 많이 떨어져 걱정이라고 말했다. “취업 때문에 장교가 되려고 한다는 말이 제일 싫어요. 여자라고 열외란 있을 수 없어요. 한국 여자축구 보시면 알 수 있잖아요. 남자들과 똑같이 훈련 받아야죠. ROTC가 돼서 부끄럽지 않은 용맹한 군인이 되고 싶어요.”

그들은 매일 남보다 먼저 등교해서 동아리 친구들과 함께 실기고사를 준비하고 체력훈련에 매진한다. 공강 시간에도 문제집을 보며 서로를 격려한다. 우씨는 집이 인천이라 새벽 5시에 일어나 가장 먼저 학교에 도착한다.

그는 이름에서도 바로 느낄 수 있듯이 믿음이 좋은 집안의 둘째 딸이다. 요리사인 언니는 ‘찬양’이고 큰집 사촌은 ‘은총’과 ‘모세’다. 모태신앙이라 어렸을 때부터 교회를 다녔다. 하지만 그는 입시준비를 하느라 맘껏 선교나 봉사활동을 하지 못한 것이 후회되지만 늘 기도해주는 집안 어른들의 은혜를 잊지 않는다.

“우리 친척들은 누구나 만날 때마다 믿음 생활을 잘해야 한다고 강조하세요. 특히, 고모와 큰아버지의 기도는 돈으로 따질 수 없는 큰 힘이 됐어요. 몸소 낮은 자들을 섬긴 예수 그리스도의 리더십으로 보답할 생각입니다. 군인의 길이 쉽지만은 않은 길이고 수많은 시련이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하지만 녹색 반지를 끼는 날까지 한 명의 낙오자도 없이 완주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글 윤중식 기자·사진 구성찬 기자 yunj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