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억대 재산 영화계에 기부 원로 영화배우 신영균씨

입력 2010-10-05 21:24


여든을 넘긴 노(老) 배우가 하룻밤 새 화제의 중심에 올랐다. 500여억원 상당의 재산을 한국 영화 발전을 위해 쾌척하기로 한 원로배우 신영균(82)씨다.

신씨는 5일 오후 서울 을지로 명보아트홀(명보극장)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돈이 다가 아니다. 저를 이렇게 만들어주고 잘살 수 있도록 축복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아껴주었던 분들을 위해 좋은 일을 하고 가야 되는 것 아니겠는가”라고 사재 기부 취지를 밝혔다.

“옛날에는 영화를 찍으면서 위험한 일이 많았습니다. 영화 ‘빨간 마후라’(1964)에 조종사가 총에 맞아 죽는 장면이 있었어요. 근데 정말로 사격수를 데려다가 제 머리 뒤에서 (실탄이 장전된) 총을 쏘아 비행기 유리를 뚫은 다음 액션을 하는 거예요. 그것도 바로 뒤에서 쏘면 긴장이 좀 덜하겠는데, 가까이서 쏘면 카메라 앵글에 잡히니까 한 10m 떨어져서 쏘는 겁니다.”

‘연산군’(1961) 촬영 때는 훈련되지 않은 말을 타고 내리막길을 달려오는 위험천만한 장면을 찍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나야 연기를 하다가 죽는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가족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었고, 사업을 하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명보제과’와 ‘명보극장’이 성공하면서 그는 배우들 사이에서 ‘재벌’이라는 별명을 갖게 됐다.

“사실 가족들과 금혼식만은 좀 멋있게 하겠다고 약속했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 돈을 없애버리는 것보다 여러 사람이 한 그릇이라도 나눠먹는 게 좋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돈을 기부한 뒤 굉장한 행복감이 느껴지는 거예요. ‘아 이거 잘했다’ 하는 생각…. 그때부터 좋은 일 하면서 사는 게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길이고 건강에도 좋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신씨는 팔순이 넘은 나이인데도 “죽기 전에 좋은 영화에 출연하고 싶다. 좋은 작품이 있으면 꼭 알려 달라”는 말을 여러 차례 할 정도로 영화에 대한 열정을 내비쳤다.

그가 내놓는 재산은 서울 명보극장과 제주 신영영화박물관. 기부를 결심한 데는 가족이 큰 역할을 했다. 특히 아들 언식씨가 “아버님이 영화배우인데 극장을 헐어버리면 안 된다. 우리는 이것 아니라도 먹고 살 수 있다. 좋은 일에 쓰시라”고 적극적으로 권유한 게 신씨의 마음을 움직였다고 한다.

기증된 재산은 박종원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과 김두호 영화평론가가 맡아 신설 공익재단을 설립하기로 했다.

이날 기자회견 자리에는 김수용 감독, 배우 남궁원, 정인엽 한국영화감독협회 이사장, 이덕화 한국영화배우협회 이사장, 박종원 한예종 총장, 배우 안성기 등 영화인이 다수 참석했다.

양진영 기자 hans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