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락한 삶 대신 믿음의 삶을… 비내리는 묘지에서 후배들이 되새기다
입력 2010-10-05 20:30
유니온 신학교 블라운트 총장-이승만 교수, 광주 외국인선교사 묘역 찾아
비가 그치는가 싶더니 또 후드득후드득 이어진다. 묘지의 잔디 가장자리를 따라 석산화가 만개한 꽃잎을 늘어뜨리고 있다. 빗물이 굵어지자 푸르고 붉은 빛이 서로 물들 것처럼 번져 간다. 큰 비석들 뒤로 손바닥만한 비석이 올망졸망 늘어서 있다. 그 중 ‘John C Crane Jr./1921년 3월 25일~10월 4일’이라고 쓰인 것이 눈에 띈다. 89년 전 오늘은 이 무덤의 주인 존 주니어가 만 6개월이 조금 넘는 인생을 마치고 하늘을 떠난 날이었다. 그는 1913년 한국에 와 전주 순천 등지에서 사역한 존 크레인(1888~1964) 선교사의 아들이다. 이 묘지에는 존 주니어의 누나인 엘리자베스와 조카인 릴리안도 묻혀 있다. 엘리자베스는 3개월 때, 릴리안은 출생 당일 세상을 떠났다. 역시 선교사였던 고모 재닛과 삼촌 폴까지 크레인 가문 3대, 5명이 이 묘지에 묻혀 있다.
4일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 호남신학대 안에 위치한 외국인 선교사 묘지. 22개의 무덤 하나하나를 어루만지며 살펴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버지니아주 리치몬드시에 위치한 유니온신학교(PSCE) 브라이언 블라운트(54) 총장과 이 학교 교수인 이승만(79) 미국장로교회(PCUSA) 전 총회장이다.
2012년 200주년을 맞이하는 유니온신학교는 한국 최초의 신학박사인 남궁혁(1882∼1950) 박사가 공부했던 곳이다. 지금까지 240여명의 한국 목회자, 신학자를 배출했다. 블라운트 총장은 이 박사의 초청으로 학교 200주년을 홍보하고 동문을 만나기 위해 한국에 왔다. 특히 오기 전부터 이 선교사 묘지를 꼭 방문하고 싶다고 고집했다고 한다.
“아버지 존과 폴 크레인 선교사는 모두 저희 유니온신학교 졸업생들이지요. 그들은 당시 미국에서 살았다면 훨씬 편한 삶을 살 수 있었지만 한국행을 고집했어요. 그 결과 자녀들을 풍토병에 잃었고, 폴은 서른 살의 나이에 교통사고로 숨졌지요. 그들에게 한국은 ‘경력의 한 자락’이 아니라 ‘삶 전체’였던 거예요.”
이 묘지에 묻힌 선교사 중 유진 벨(한국명 배유지·1868∼1929), 클레멘트 오웬(오기원·1867∼1952) 선교사 등도 역시 유니온신학교 출신이다. 둘은 광주기독병원의 설립자이기도 하고, 유진 벨의 경우 인세반 유진벨재단 이사장, 인요한 세브란스 국제진료소장 등 4대손까지 한국에서 사역을 이어가고 있다.
블라운트 총장은 이 교수와 함께 무덤 사이를 걸으며 선교사 하나하나의 이름을 부르고, 사역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참으로 놀랍다”는 소회를 전했다.
“한국에 처음 온 것인데 이렇게 강한 유대감을 느낄 줄은 몰랐어요. 모두 여기 계신 분들의 열정과 헌신 덕분이겠지요. 이들의 소명이 얼마나 강렬한 것이었나를 생각해 봅니다.”
특히 그는 200년 가까운 학교 역사상 첫 흑인 총장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방문이 더 특별하다”면서 “미국에서보다 한국에 오니 이렇게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하나의 믿음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이 더욱 감격스럽다”고 했다.
두 사람을 비롯한 일행은 다음 장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인근에 위치한 광주기독병원이었다. 병원 박물관에서도 1880년대 말 이후 외국인 선교사들의 역사를 만날 수 있었다.
블라운트 총장의 부인 샤론(54)이 갑자기 “여기 좀 보세요”라고 소리쳤다. 한 코너에 유니온신학교 건물이 그려져 있었다. 이국 낯선 장소에서 자신들의 학교를 발견한 이들은 함박웃음으로 반가워하며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 코너에는 “1892년 미국 남장로교 최초의 한국 선교사 7명이 미국 유니온신학교에서 합심기도한 후 한국에 도착했다”고 쓰여 있었다. 블라운트 총장은 7명 선교사 사진을 들여다보더니 “이 사람은 정킨이네요. 이쪽은 테이트고요”라며 알아봤다.
일행은 미국남장로교의 지속적인 도움으로 광주기독병원이 성장한 과정, 이곳에서 일했던 윌슨 선교사가 훗날 손양원 목사가 사역한 여수 애양원을 세운 이야기,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때 이 병원이 총에 맞은 수많은 젊은이를 치료하고 살려낸 이야기 등 병원 측 설명을 들었다. 또한 ‘받는 선교’에 머물지 않기 위해 전 직원의 모금을 통해 아시아 국가들에서 의료 봉사를 하는 ‘주는 선교’를 해 오고 있다는 대목에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저는 ‘놀랍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한국이 전쟁 이후 남북 대립 속에서 경제 발전과 기독교 성장을 이룬 것이 늘 놀라웠는데 지금은 납득이 됩니다. 당대의 가장 헌신적인 기독교인들이 한국을 이처럼 사랑하고, 품고, 기도했기 때문이며, 한국의 기독교인들이 그 사랑을 다시 다른 이에게 베풀어 왔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블라운트 총장은 이에 앞선 3일 서울 잠실동 주님의교회 주일예배 때 네 차례 설교를 했다. “미국에서는 같은 설교를 많아야 2차례 정도 하는데, 네 차례 설교는 처음 해봤다”고 웃어 보이면서 “그래도 매번 성도들에게서 새로운 에너지를 받을 수 있어 힘들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미래를 기억하라’는 제목으로 “미래는 예측할 수 없어 두렵지만, 하나님이 이미 승리의 미래를 예비하고 계시다는 것을 믿고 기억하자”는 말씀을 전했다. “지금 어떤 고통 아래 있더라도 하나님의 미래를 믿고, 이를 위해 일하십시오. 하나님의 약속이 이뤄질 것입니다”라는 부분은 100여년 전 미지의 한국으로 건너오며 선교사들이 품었던 마음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광주=황세원 기자 hws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