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황주리] 압록강은 흐른다

입력 2010-10-05 17:35


며칠 전 텔레비전에서 백 살이 넘은 두 노인이 임진각에서 북한 땅을 바라보며 갈 수 없는 고향을 그리워하는 모습을 보았다. 부모님 묘를 지키고 싶은 염원으로 평생 몸과 마음과 두뇌를 열심히 닦으며 살아왔다는 노인들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그분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문득 ‘압록강은 흐른다’의 저자 이미륵을 떠올렸다. 1899년 황해도 해주생이니까 살아있다면 올해로 111세가 된다. 내가 읽었던 가장 아름다운 책 중의 하나가 이미륵의 자전적 소설집 ‘압록강은 흐른다’이다. 1987년 미국에 처음 건너갈 때도 나는 가방 속에 이 책을 넣어갔다. 그 외로웠던 시간들 속에서 막막한 밤중에 홀로 깨어 들춰보던 책 또한 이 책이다.

이 책을 처음 읽었던 사춘기 시절 이후, 압록강은 나의 마음속에서 잊히지 않고 끊임없이 흐르는 영원의 강이 되었다. 천석꾼의 여유와 깨인 정신을 지닌 아버지와 후덕한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이미륵의 이름은 미륵보살을 찾아가 백일기도를 드린 끝에 얻은 데서 유래한다. 1917년 고향을 떠나 서울에 올라가 경성의학전문학교에 입학하고, 서울에서 3년 동안 의학수업을 받은 그는 서양의학의 기초인 시체 해부에 충격을 받는다.

1919년 3·1운동 당시 비밀리에 금지된 전단을 뿌리다가 고향인 해주로 피신한 미륵에게 어머니는 말씀하신다. “네가 갈 수 있는 데까지 멀리멀리 가거라. 네가 그토록 가고 싶어 하던 독일이라는 나라로 가거라.” “그때 어머니 나이는 60이 다 되었고, 그런데도 어머니는 아주 늙은이처럼 보였다.” 이미륵은 그렇게 쓰고 있다.

기차를 타고 만주 평야를 지나고 중국을 지나, 상해에서 배를 타고 떠나 그는 홍콩에 도착한다. 그 다음에는 베트남과 스리랑카 섬을 구경한다. 수에즈운하를 지나고 아프리카 대륙을 지나 유럽 땅에 도착하는 과정을 읽는 마음은 나처럼 여행을 많이 한 사람에게는 각별하게 다가온다. 처음 들어보는 낯선 항구들을 지나 그는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끝없는 항해를 시작한다.

독일에 정착한 이후에도 그는 부다페스트와 베오그라드, 세르비아 등을 여행하기도 한다. 그 옛날에 그 낯선 땅을 밟았던 이미륵의 감회는 상상만 해도 마음이 떨린다. 그렇게 먼먼 길을 돌아 독일에 도착한 그는 오래지 않아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슬픈 편지를 받는다.

뉴욕에서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갑작스런 전화를 받았을 때도, 나는 이미륵의 ‘압록강은 흐른다’를 떠올렸다. 독일 땅을 처음으로 밟은 조선인 청년 이미륵의 고독과 슬픔에 비하랴. 1920년 5월 26일 독일에 정착한 그는 28년 동물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자전적 소설 ‘압록강은 흐른다’를 집필하기 시작한다. 외로움과 질병이 엄습하기 시작했고, 그리운 조국 조선에 다시는 돌아가지 못한 채 1950년 3월 20일 그는 세상을 떠난다. 30년 동안의 긴 고독이었다.

고향을 떠나며 그가 쓴 이 구절은 사십년이 넘도록 눈에 보듯 생생하게 내 안에 남아있다. “압록강은 유유히, 그리고 시퍼렇게 흐르고 있었다.”

황주리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