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배추 국감’ 정쟁 유치하다
입력 2010-10-05 17:36
4일 국회 국정감사장에서는 한 국회의원이 검은 비닐봉지에 싸들고 온 배추와 양배추를 꺼내 장관에게 값을 아는지 물어보는 장면이 있었다. 실물 없이도 질의응답이 충분히 가능한 일에 지나친 생색이다. “단군 이래 최대의 밥상 공황”이라는 황당한 과장법을 쓴 의원도 있었다. 같은 날 민주당 손학규 신임 대표는 축하 난을 들고 온 정진석 대통령정무수석에게 배추 파동을 4대강 사업과 연결시켜 비판했다.
새로운 정치를 표방하며 갓 취임한 손 대표다. 파동의 원인이 여름철 기상 불순으로 고랭지 배추의 작황이 나쁜 데 있음은 국민적 상식이다. 손 대표와 민주당이 4대강 반대와 배추 파동을 억지로 연결하려는 것은 너무 상투적이다. 손 대표는 같은 날 아침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니라 국민을 잘살게 하는 반대를 해야 한다”고 말했었다.
농림수산식품부 설명으로는 4대강 유역의 배추 재배면적은 전국 재배면적의 0.3%에 불과하다. 사실이라면 4대강과 배추 파동은 아무 관계가 없다. 강변에서 재배하는 배추가 잦은 비의 피해를 더 많이 본다. 물론 채소 작황이 나쁠 것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음에도 대책을 등한시한 농식품부에도 잘못은 있다. 농산물 가격파동이 있을 때마다 중간 유통업자의 폭리를 지적하지만 그때뿐이고 농산물 유통구조를 개선하려는 노력은 여전히 무소식이다. 요컨대 배추 파동은 농업과 이를 관할하는 농식품부의 영역이다. 당장의 응급대책과 장기 대책 마련은 농정과 시장 측면에서 접근해야 할 일이다.
그럼에도 정치인들은 때를 만난 듯 민심을 부채질하고 있다. 어느 의원은 중국산 배추가 긴급 수입되자 몇 년 전 중국산 김치에서 기생충 알이 검출된 일을 환기시켰다. 본질과 무관한 정치적 논란은 국민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물가 전반에 대한 불안감을 퍼뜨릴 우려가 있다. 벌써 대형 마트의 포장김치는 값을 올려도 진열하기 무섭게 동나고 있다.
채소농사는 수요공급 상황에 민감하다. 이미 고랭지 채소의 작황이 좋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 남부지역 채소농가들은 파종 면적을 크게 늘렸다. 가을재배와 늦가을재배 배추가 출하되면 배추값은 곧바로 안정된다. 정치인들이 정략을 앞세워 ‘배추 대표’가 되고 ‘배추 정국’을 키울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