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추값 뛰니 도둑도 뛴다
입력 2010-10-05 18:35
천정부지로 치솟는 배추값 여파로 전국 곳곳에서 배추를 훔쳐가는 사건이 잇따라 터져 농민들의 한숨이 깊어만 가고 있다. 비싼 몸값 탓에 배추가 절도범의 주요 표적이 되면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경찰, 농민들은 도난 예방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지난 4일 오전 0시10분쯤 강원도 원주시 명륜동 도로 옆 텃밭에서 주민이 재배하던 배추 10여포기를 훔친 신모(54)씨가 행인의 신고로 경찰에 넘겨졌다. 앞서 지난 1일에는 강원도 평창군 용평면 어모(63)씨의 밭에서 배추 420여포기를 훔쳐 1t 화물차에 싣고 달아나려 한 이모(73)씨 등 3명이 주인에게 발각돼 덜미를 잡혔다. 이들이 훔친 배추는 어씨가 ‘상(上)품’ 출하 이후 추가판매를 위해 밭에 쌓아둔 ‘하(下)품’ 배추였다. 지난달 19일에는 전북 무주군 무풍면 무풍삼거리 인근 밭에서 최모(39)씨가 기르던 배추 1000여포기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최씨는 “여름에 배추값이 헐값이어서 수확을 포기했다가 최근 값이 폭등해 밭에 가보니 배추 대부분이 없어졌다”고 말했다.
갓 싹을 틔운 모종도 싹쓸이 하고 있다. 경기도 수원시 파장동에 사는 송모(78·여)씨는 지난달 28일 노송지구대를 찾아가 텃밭에 파종한 배추모종 120여개를 도둑맞았다고 신고했다. 송씨는 “배추값이 아무리 비싸도 텃밭에 심은 모종까지 가져가서야 되겠냐”고 씁쓸해했다.
절도범들은 가족들이 먹으려고 재배한 주말농장까지 손을 대고 있다. 지난달 초 강원도 원주시 행구동에 텃밭을 개간해 가족 주말농장을 시작한 전모(54)씨는 수확을 앞둔 배추와 무, 파 등 농산물 일부를 도난당했다.
배추절도가 기승을 부리면서 정부와 지자체, 경찰, 농민들은 일년 내내 흘린 땀의 결실을 빼앗기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총력전을 펴고 있다.
농촌진흥청은 첨단 정보통신(IT)기술을 이용한 ‘농작물 도난방지장치’를 개발했다. 이 장치는 침입자가 농장에 접근하면 경고방송을 울리고 주인의 휴대전화로 통보하는 시스템으로, 지난달 30일 강원도 홍천군 동면 인삼재배 포장에서 현장평가회를 가졌다.
지자체와 경찰도 농촌마을 입구에 이동식 감시카메라를 설치하거나 농촌지역 지구대와 파출소에 순찰활동 강화를 지시했다.
농민들도 자구책 마련에 나섰다. 도심 외곽에 위치한 강원도 원주시 문막읍 배추재배 농가들은 도난 피해가 우려되자 자율방범대를 조직해 밤 새워 순찰을 돌며 밭을 지키고 있다.
농민들은 “농산물 절도는 현장에서 범인을 잡지 못하면 소용없다”며 “수확기에 공익근무요원을 지원해주는 등 경찰과 행정당국이 좀 더 힘써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국종합=정동원 기자 cd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