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2군 캠프를 가다] “영광의 1군생활 2010년 고작 8일 2011년엔 더 오래 머물고 싶어요”
입력 2010-10-05 17:25
LG 구리 챔피언스파크·두산 이천 베어스파크
올 한 해 팬들의 함성으로 뜨거웠던 프로야구 경기장. 시골이나 수도권 외곽에 있는 2군 경기장에서도 2군 선수들이 뛰는 퓨처스리그가 월요일을 빼고 매일 열렸다. 비록 찾아오는 팬은 거의 없지만 무명 선수들은 그 곳에서 경기에 열중하며 스타로 발돋움하는 장면을 항상 꿈꾸고 있다.
LG 투수 김지용
#“1군 무대에 올라선다는 것 만으로도…”
지난달 27일 경기도 구리 챔피언스파크에서는 LG 2군 선수들의 퓨처스리그 마지막 경기가 열렸다. 상대는 상무팀. 관람석도 없는 경기장 내에는 2군 선수들의 목소리와 파이팅을 외치는 구호만 들렸다. 9회말 스코어는 LG가 상무에 12대 2로 크게 앞서 이미 승부는 결정난 상태였다. LG는 9회가 시작되자 김지용(22)을 마운드에 올렸다. 마지막 경기를 길게 끌고 싶은 아쉬움 때문이었을까. 김지용은 연속 3안타로 2점을 내줬다. 하지만 마지막 타자를 삼진으로 막고 올해 LG 2군 경기를 모두 마쳤다. 경기를 끝낸 뒤 LG 김기태 2군 감독이 선수들을 불러 모았다. 김 감독은 “오늘로 우리의 2010년은 끝났다. 우리에게 내일부터는 2011년이다. 겨울에 열심히 하자. 그러면 내년부터 여러분의 인생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말했다.
코칭스태프와 미팅이 끝나고 선수들이 뿔뿔이 흩어져 짐을 싸고 있는 가운데 마무리로 나선 김지용을 만났다. 김지용은 마지막 경기에 대해 “더 하고 싶은데 끝나니 시원섭섭하다”고 말했다. 올해 2년차 투수인 김지용은 신고선수 출신이다.
신고선수란 신인지명을 구단으로부터 받지 못한 선수 중 구단이 가능성이 엿보이는 선수를 일반 선수와 함께 훈련시키는 연습생을 뜻한다. 신고선수는 개막 선수 명단에는 포함될 수 없고, 만약 가능성이 보인다면 이후 구단과 정식 계약을 통해 당해년도 6월 1일부터 정식 선수로 등록이 가능하다. 정식 선수 등록 전 까지는 물론 연봉도 없다. 두산 김현수 손시헌, 삼성 이우선, 롯데 김수완 등이 신고선수 출신으로 이름을 날렸지만 이들을 제외한 대부분이 무명이다.
김지용은 또 신고선수 출신에다 대학도 강릉영동대라는 전문대를 나왔다. 김지용은 “우리 대학에 야구단이 생긴 지가 5년이 됐는데 우리 대학에서 프로선수가 된 것은 내가 처음”이라며 “프로에 온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생각한다”며 멋 적은 웃음을 보였다.
무명에 신고선수로 들어왔지만 김지용은 지난해와 올 상반기 주목을 받아 지난 6월 24일 SK전 때 처음 1군에 등록됐다. 하지만 1군의 벽은 녹록치 않았다. 김지용은 경기에 다섯 번 나와 승패없이 방어율 7.88이라는 초라한 성적으로 2군으로 다시 내려왔다. 너무 정면승부를 좋아하다 난타당한 것이다.
김지용은 소중한 1군때의 시간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1군에 딱 8일 있었다. 하지만 내가 1군 무대에 올라선다는 것만으로도 영광이다. 내년에는 더 오래 1군에 있고 싶다. 그래서 팀이 가을야구를 하는데 조그마한 보탬이라도 되고 싶다”고 말했다.
두산 투수 장민익
#높은 1군의 벽, “다시 한 번 기회가 주어진다면…”
지난달 14일 경기도 이천 베어스필드에서 만난 두산 2군 선수 장민익(19)은 키가 2m7로 입단 당시 최장신 프로야구 선수로 이름을 올린 화제의 인물이었다. 왼손투수에다 큰 키로 ‘한국의 랜디 존슨’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드래프트 1라운드에서 두산과 연봉 1억5000만원에 계약할 정도로 기대주였다. 당연히 개막전 엔트리에도 포함됐다.
그러나 고교를 갓 졸업한 신인에게 프로의 벽은 높았다. 장민익은 첫 선발로 나선 4월 23일 대 삼성전을 잊지 못한다. 그는 2.2이닝 동안 상대 타선에 난타당해 5실점하며 강판됐다. 특히 상대 최형우에게 맞은 홈런이 뼈아팠다. 장민익은 당시 상황에 대해 “컨디션은 매우 좋았다. 최형우 선배가 타석에 들어와서 볼 2개를 던진 후 그냥 한 가운데로 넣었다. 길게 뻗어나갈 것 같지도 않아 홈런이라고는 생각지도 않았다. 그런데 뒤를 돌아보니 홈런이었다. 나도 깜짝 놀랐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고졸 신인에게 프로의 높은 벽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그는 “고교와 프로는 파워부터 틀리다. 정신력도 다르다. 어떻게든 칠려는 모습이 보였다. 고교때는 그냥 힘으로만 하면 됐지만 프로에서 힘으로 던지면 타자들이 모두 다 쳐낸다”고 했다. 결국 그는 곧바로 2군행을 통보받았다.
장민익에게 또다시 명예회복을 할 기회가 찾아왔다. 5월 20일에 전격 1군으로 올라와 또다시 선발 투수로 나서게 된 것. 5월 26일 롯데전에서는 3이닝을 1실점으로 막으며 비교적 선방했다. 하지만 3일 후인 29일 삼성전에서 또다시 1⅓이닝 동안 홈런 두 방을 맞고 6실점을 하며 무너졌다. 그 이후 장민익의 모습을 1군에서 볼 수 없게 됐다. 신인으로서 푸른 꿈을 품고 한 해를 시작했지만 9경기 13⅓이닝을 던져 25피안타 평균자책점 10.54가 올 시즌 1군에서 그의 성적이다.
결국 장민익은 5월부터 본격적으로 2군 생활을 시작했다. 고교 때의 일을 모두 잊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오전 8시에 일어나 오전 훈련, 2군 시합, 야간훈련, 특별훈련으로 이어지는 끝없는 훈련이 4개월 넘게 이어졌다. 야간 자율시간 때에는 인터넷이나 탁구, TV를 보는 것이 전부일 정도로 단조로운 생활이 계속됐다. 하지만 쓰라린 경험과 희망이 있기에 군말 없이 모두 소화했다. 부모님이 살고 계신 전남 순천은 1주일에 한 번 갈까 말까다. 현재는 좋은 컨디션을 유지해 직구를 시속 150km까지 끌어올리는 것이 목표다.
장민익은 “올해가 너무 아쉽다. 기회가 있었는데 못 잡았다. 한 번 얻기도 힘든데 두 번이나 얻었다. 그런데도 기회를 못잡았다. 다시 한 번 기회가 주어진다면 정말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반드시 잡겠다”고 말했다.
구리·이천=모규엽 기자 hir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