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심재수 (11) 사내커플 아내와 주일마다 교회 데이트

입력 2010-10-05 17:55


“인생 최고의 축복이 무엇일까?”



가끔 이런 생각을 해본다. 나는 이 질문에 대한 분명한 대답을 갖고 있다. 세상을 살아오면서 얻은 결론이다. 역시 ‘만남의 축복’이 최고라는 생각이 든다.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 아내와의 만남, 회사 사람들과의 좋은 만남이 곧 축복이다.



나는 고려대학교를 졸업하고 어느 외국인 회사에 다녔다. 그곳에서 한 여성을 만났다. 그녀는 아주 예쁘고 총명했다. 당시 해외연수를 다녀올 정도면 제법 잘 나가는 여성이었다. 나를 싫어하는 눈치도 아니었다. 그런데 일요일에 만나자고 데이트 신청을 하면 번번이 거절했다.

“왜 데이트를 거절합니까?”

그녀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가족이 모두 영락교회에 다닙니다. 주일은 교회에 가야 합니다.”

“잘 됐어요. 그러면 내가 영락교회에 다니면 되겠네요.”

나는 교회에 단 한번도 가본 적이 없다. 단지 그녀에게 환심을 사기 위해 교회 출석을 약속했다. 상대를 사랑하면 그 사람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다. 사랑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일은 즐거운 마음으로 하게 되어 있다. 그것은 성경에도 분명히 기록되어 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요한복음 14장 15절)

두 사람이 함께 예배를 드리고 오후에는 데이트를 즐겼다. 서울 근교 경치 좋은 곳은 안 가본 곳이 없었다. 관광버스를 타고 내장산까지 다녀온 적도 있었다.

사내에서 사원들 모르게 교제하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우리는 완벽하게 직원들의 눈을 속였다. 전화를 했다가 다른 사람이 받으면 얼른 끊어버렸다. 이런 일이 몇 번 반복되면서 직원들의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요즘 이상한 전화가 많이 걸려오네. 왜 전화를 받으면 끊지? 도대체 누구지?”

나는 속으로 키득거렸다. ‘그게 바로 나야.’

휴대전화가 없던 시절이라서 껌 종이에 약속 장소와 시간을 적어 메모를 전했다. 여러 가지 기발한 방법을 모두 동원해 데이트를 갖는 재미가 쏠쏠했다.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나온다.

막상 결혼을 하려고 하니 장벽이 너무 높고 많았다. 장모님은 일찍 남편을 잃고 2남 2녀를 훌륭하게 키워낸 분이다. 남편을 잃은 후, 비통한 심정으로 지내는데, 어디선가 종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오더란다. 그 종소리를 따라가 보니 교회였다. 무턱대고 예배당에 들어가 기도하고 찬송을 하는데 마음이 아주 평안하더란다. 그때부터 신앙생활에 몰입했다. 평생을 신앙에 의지해 오신 강직한 분이다. 두 아들과 딸이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막내딸의 결혼을 허락할 이유가 없었다.

내 어머니의 반대도 만만치 않았다. 어머니는 불교 신자였다. 역시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4남 1녀를 잘 키워낸 여인이었다. 아들들을 잘 키워서 서울로 유학을 보냈으니 마을에서는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어머니는 예수 믿는 처녀를 만난다는 것이 불만이었다.

“같은 종교를 가진 사람끼리 결혼해야 행복한 법이다.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은 제사도 지내지 않는다. 좋은 규수를 찾아볼 테니 그만 헤어져라.”

어머니의 말씀에 순종할 수는 없었다. 오히려 어머니를 설득했다.

“결혼하면 여자가 우리 집으로 오는 겁니다. 제가 잘 가르칠게요. 저를 믿어주세요.”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 말을 믿는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장모님의 반대는 좀처럼 수그러들 기세를 보이지 않았다. 한 사건이 장모님의 마음을 결정적으로 흔들어놓았다. 하숙집에서 지내던 중 복통을 일으켜 쓰러진 적이 있었다. 아내가 나를 집으로 데려와서 극진히 간호해 주었다. 당시 체중이 53㎏ 정도였다. 음식을 거의 먹지 못하고 지냈다.

“도대체 마음에 드는 구석이 하나도 없어. 예수도 안 믿지, 몸도 약하지, 모아놓은 재산도 없지…. 몸에 병까지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어.”

장모님의 실망이 극에 달했다.

정리=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