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이동재] 부르카 전쟁

입력 2010-10-04 21:16


전 세계적으로 이슬람 여성들의 부르카(전신을 가리는 전통복장) 착용과 관련된 논란이 더욱 커질 모양새다.

역설적이지만 발단은 톨레랑스(관용)와 문화의 다양성을 내세워 온 프랑스에서 시작됐다. 프랑스 의회는 지난달 14일 공공장소에서 여성의 전신을 가리는 이슬람 전통 부르카 착용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표결 결과도 놀라웠다. 246대 1. 단 1명을 제외한 모든 의원이 이슬람식 복장에 대한 반감을 드러낸 셈이다.

이슬람에 반대하는 극우 정당 자유당과 연립해 소수 정부를 출범시킨 네덜란드도 프랑스의 뒤를 이어 유사한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자유당 헤르트 빌더스 당수는 “이슬람은 파시즘에 가깝다”며 “신원을 알 수 없도록 온몸을 감싸는 복장을 입는 이슬람 여성들에게는 매년 세금을 매겨야 할 것”이라는 논리를 펴 왔던 인사다. 영국과 스페인, 그리고 스위스 등의 움직임도 예사롭지는 않다.

유럽 대륙에서의 반(反) 이슬람 정서는 앞으로도 더욱 넓게 퍼질 기세다. 테러 위험과 경제난이 계속되는 한 이 같은 추세는 진정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유럽 각국은 여성의 인권 보장을 위해 부르카 착용을 금지해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속내는 다르다. 현재 유럽의 이슬람계 인구는 5000만명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대부분 이민자들인데다 소득도 낮은 편이지만 이들을 바라보는 유럽인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결국은 이들로 인해 일자리가 줄어드는데다 복지 측면에서도 손해를 보고 있다는 인식이 팽배한 때문이다.

독일 중앙은행의 틸로 자라친 이사는 반 이슬람 분위기를 공개적으로 확산시킨 장본인이 됐다. 그는 ‘독일은 자멸하고 있다’는 저서에서 무슬림(이슬람교를 믿는 사람들)을 대놓고 비난했다. 자라친 이사는 “독일의 사회복지 시스템에 의지해 살아가면서도 이 나라를 부정하고 아이들 교육도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이들을 인정할 필요 없다”고 공개적으로 폄하했다. 그러면서 “부르카나 히잡(이슬람 여성들이 머리와 상반신을 가리기 위해 쓰는 쓰개) 착용으로 인해 논란거리나 만들어내는 이들에 대한 법적 통제도 강화돼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더구나 그는 무슬림 이주민 자녀들은 지능도 낮은 편이라고 몰아세웠다. 뜻밖인 것은 독일인들의 반응이다. 주간 슈테른의 의뢰로 포르자연구소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자라친 이사의 견해를 지지한다’는 의견이 무려 20%에 달했다.

종교계에서도 유럽의 이슬람화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은 최근 바티칸 해외선교회 소속인 피에로 게도 신부의 말을 인용, “유럽의 저출산 추세가 계속되고 반대로 무슬림들은 늘어날 경우 끝내는 그들이 유럽을 장악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게도 신부는 구체적으로 “이탈리아의 경우 인구 통계학적 측면에서 볼 때 매년 낙태와 가정파괴로 12만∼13만명씩 줄고 있다”며 “하지만 외국에서 들어오는 이민자 20만명 중 절반 이상을 무슬림이 차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급기야 이슬람권 국가의 지도자들은 유럽의 이슬람 혐오증(Islamophobia)에 대한 짙은 우려를 제기했다. 지난달 말 열렸던 유엔 총회에서 이집트의 아흐메드 아불 가이트 외무부 장관은 “서방 세계가 전반적으로 무슬림 세계와 충돌하려는 듯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며 “양측의 문명이 맞부딪칠 경우 득을 볼 세력은 극단주의자들뿐”이라고 지적했다.

더 큰 문제는 반 이슬람 정서가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 내에서도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지난달 “미국 내 이슬람교도들이 최근 급속히 번지고 있는 반 이슬람 기류에 대해 곤혹스러워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이슬람 세력들은 과연 자신들이 미국 사회에 융화될 수 있는 존재인가에 대한 근원적 회의를 느끼고 있을 정도”라고 전했다. 유럽과 미국의 이슬람 기피증이 풍선처럼 부풀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심사는 두렵다.

이동재 국제부 선임기자 dj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