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규홍의 식물 이야기] 새를 이용해 번식하는 향나무

입력 2010-10-04 17:54


줄기에서 독특한 향이 난다는 뜻의 이름을 가진 향나무는 소나무, 느티나무와 함께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 살아온 나무 가운데 하나다. 향을 이용하기 위해서 예부터 심어 키운 나무다. 향나무의 향기는 몸과 마음을 맑게 할 뿐 아니라 하늘 끝까지 뻗어나갈 만큼 강하기 때문에 일상생활에 요긴하게 활용돼 왔다. 이 향기는 여느 식물들처럼 꽃이나 열매가 아니라 줄기 자체와 잎에서 나온다.

향나무는 한 그루만으로도 정원 전체에 은은한 향기를 품게 할 정도로 향기가 강해 대표적인 정원수로 꼽히는 나무다. 뿐만 아니라 겨울에도 푸르름을 잃지 않고, 강건한 자태를 유지해서 선비의 기품을 상징하는 나무로 여기기도 했다.

선비의 정원이나 궁궐 마당에서 오래된 향나무를 만날 수 있는 것도 그런 까닭에서일 게다. 그 중에 천연기념물 제194호인 창덕궁 향나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인데, 안타깝게도 지난 여름 태풍으로 줄기 부분에 피해를 입었다. 절반 이상이 부러졌지만 우람한 줄기나 용트림하는 모습은 남아 있어 천연기념물로의 보존 가치는 여전하다고 한다.

우리 민족이 좋아하는 나무지만 향나무는 번식이 쉽지 않다. 잘 익은 씨앗을 땅에 심고 정성껏 돌봐주어도 싹은 잘 나오지 않는다. 향나무는 독특한 번식 전략을 갖고 있다. 향나무의 씨앗은 단단하고 질겨서 잘 썩지 않는다. 여리디 여린 뿌리와 새싹이 돋아나기 위해 스스로 깨뜨리기에는 향나무 씨앗의 껍질은 지나치게 단단하다.

그래서 향나무는 하늘을 나는 새를 이용해 씨앗을 퍼뜨리는 전략을 택했다. 향나무는 새들의 눈에 잘 띄는 열매를 가지 끝에 맺어 새들을 유혹한다. 새들이 향나무 열매를 삼켜서 씨앗에 붙은 과육을 소화시키는 동안 씨앗의 껍질은 새의 소화액에 의해 서서히 부식된다. 약한 뿌리와 새싹이 터져 나오기 좋은 조건이 만들어지는 셈이다. 또 씨앗을 품고 땅에 떨어진 새의 배설물은 싹이 틀 때까지 적당한 온도를 제공하면서 씨앗을 보호할 뿐 아니라 일정한 양분까지 제공한다. 게다가 스스로 새로운 자리로 옮겨갈 수 없는 향나무를 대신해서 새들이 더 넓은 공간으로 씨앗을 퍼뜨려주기까지 한다. 그야말로 일석이조다.

잎 내고 꽃 피는 식물의 노동으로 맺은 열매를 새들의 먹이로 제공하고 번식 공간을 넓혀가는 향나무의 나무살이는 보금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노동의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사람살이와 다를 바 없다.

천리포수목원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