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홍사종] 위기 청소년 문제와 친서민 예산
입력 2010-10-04 17:50
“몇 만원에 몸 파는 아이들 문제를 보듬지 못하는 것은 나라의 부끄러움이다”
얼마 전 경기도 화성시 바닷가에 있는 아름다운 한옥 연수원에서 한국여성인권진흥원(원장 이화영)과 우리 연구소 소속 교수 및 예술가들이 함께 아이디어와 뜻을 모아 성매매로 몰린 위기 청소년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상상력 일깨우기’라는 제목의 이 프로그램은 가출 후 생존수단으로 성매매 등 막다른 삶의 골목으로 몰린 위기 청소년들에게 문화예술과 인문학의 창을 통해 자존감을 회복시켜주자는 의도에서 비롯됐다. 자기 존재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프로그램이 직업자활훈련보다 선행돼야 한다는 이화영 원장의 소신 때문이기도 했다.
이 행사를 진행하던 중 상담 선생님 한 분으로부터 뜻밖의 말을 들었다. 아이들에게 “정부가 여러분에게 무엇을 해주었으면 좋겠느냐”는 질문에 상당수 아이들이 “부모 교육 좀 시켜주세요”라는 요구를 해왔다는 것이다.
위기 청소년들은 가출소녀가 대부분이다. 더 명확하게 말하면 가정으로부터 뛰쳐나온 ‘가출 청소년’이 아니라 ‘탈출 청소년’이라는 표현이 정확하다. 조사에 의하면 위기 청소년의 대부분은 조혼(早婚)이거나 불화(不和)한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이다. 그리고 예외 없이 가정폭력의 피해자들이다. 부모의 이혼과 잦은 다툼, 친부의 알코올 중독과 성폭력 등 씻을 수 없는 상처를 가슴 깊이 새기고 집에서 도망친 경우가 많다.
인생에 있어 가장 민감한 사춘기를 어루만지고 보듬어 주어야 할 가정에서 폭력과 갈등으로 보낸 아이들의 정신적 상태가 피폐해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부모 교육 좀 시켜 달라’는 요구는 자신들을 낳아준 부모에 대한 애증의 극단적 표현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렇다면 부모 교육으로만 위기 청소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사실 성매매 청소년들의 문제 안에는 가정의 경제적 궁핍과 이로 인한 가족 간 갈등이 깊숙이 숨겨져 있다. 부모의 가난이 구성원 간 갈등으로 나타나 폭력으로 이어진다.
위기 청소년 대다수가 저소득층 자녀인 점은 이를 잘 말해준다. 따라서 청소년 성매매를 단순히 인권 차원에서만 바라보는 관점은 잘못된 발상이 다. 특히 인권 감수성이 떨어지는 국민 대부분은 단순 성매매 문제로만 위기 청소년의 문제를 바라본다. ‘가난에 찌들고 폭력이 다반사인 가정으로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그들의 하소연에는 정부의 친서민 예산, 즉 사회복지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는 메시지가 간절히 숨겨져 있다.
그렇다보니 여성학자들은 사회적 최약자인 우리의 위기 청소년 문제를 인권과 교육, 복지가 묶인 친서민 정책의 관점에서 풀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현실은 거꾸로 가는 모양이다. 천문학적인 4대강 예산 편성과 달리 내년도 친서민 복지 예산은 86조원으로 편성됐는데 올해보다 5조원 많은 액수다. 하지만 연금지출액과 주택지출 3조5000억원을 빼면 1조5000억원이 느는 셈인데 내년도 전체 예산 증가율보다 낮은 액수다. 물가인상률을 3%대로 가정해볼 때 친서민 예산은 동결된 셈이다. 위기 청소년을 보호·교육하는 여성가족부 예산도 힘센 부처에 밀려 사실상 동결을 면치 못했다.
가정은 한 사회를 지키는 든든한 보루이자 국가 안보의 버팀목이다. 인간으로서의 자존감조차 상실한 채 거리를 떠돌며 단 돈 몇 만원에 몸을 팔아야 하는 나이 어린 대한민국 자녀들, 이 위기 청소년들의 문제를 더 잘 보듬지 못하는 것은 국가적 수치가 아닐 수 없다.
엊그제 배추값이 포기당 1만4000원까지 폭등하자 대통령이 ‘양배추김치’를 식탁에 올리라고 지시했다. 양배추값 또한 1만원대를 넘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내린 지시다. 엄밀히 따져보면 중량이 작은 양배추로 담은 김치 비용이 더 든다는 것을 서민들은 다 알고 있는데 청와대와 대통령만 몰랐다는 얘기다. 프랑스 혁명 당시 마리 앙트와네트 왕비가 ‘빵을 달라’며 행진하는 시민을 향해 뱉은 ‘과자를 먹으면 되지’를 연상케 하는 이 발언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정부의 친서민 정책 구호가 말로만 떠드는 사회적 소수자를 향한 이벤트성 구호는 아닌지 의구심을 가져본다.
홍사종(미래상상연구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