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조용래] 출산·양육의 기회비용 따져봤나
입력 2010-10-04 17:56
자장면과 짬뽕 중 하나를 택하기란 쉽지 않다. 자장면으로 하자니 짬뽕이 아쉽고 거꾸로 해도 마찬가지다. 한쪽을 택해 어쩔 수 없이 다른 한쪽을 버려야 하는 것을 경제학에선 기회비용이라고 한다. 자장면을 골랐다면 자장면의 기회비용은 짬뽕인 셈이다.
기회비용은 실제로 지불하는 것은 아니다. 흔히 주식이 오름세를 타면 사람들은 부동산보다 주식에 투자할걸 하고 아쉬워한다. 놓친 물고기가 커 보이는 것처럼 기회비용은 우리 삶에 적지 않게 개입한다. 기회비용은 늘 마음속 저울질의 기준이 된다. 정책도 마찬가지다. 기회비용을 충분히 고려한 정책이라면 반은 이미 성공한 것이다.
그런데 정부의 ‘2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 2011∼2015’도 기회비용 개념의 접근은 별로 안 보여 아쉽다. 출산과 양육의 기회비용, 다시 말하자면 애를 낳아 키우면서 포기할 수밖에 없는 이득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듯하다. 대신 유아휴직급여 최대 월 100만원까지 인상, 육아기 단축근무 장려, 보육시설 확충, 보육·교육비 지원 확대 등 주로 대증요법식 대책이 대부분이다.
여성 취업자 경력단절 심각
워킹맘(일하는 엄마)을 기준으로 할 때 애를 낳을 것인지 낳지 않을 것인지, 하나만 낳을 것인지 더 낳을 것인지 등의 선택에서 기회비용은 뭔가. 애를 낳는 쪽을 택할 때의 기회비용은 출산 등으로 잃을 수밖에 없는 이득이다.
한 연구에 따르면 30대 여성 취업자의 경우 경력단절이 있는 취업자의 임금은 그렇지 않은 취업자의 74%에 불과해 상대적으로 연간 770만원의 소득 상실이 있다. 연공급(年功給)식 임금체계에선 한 번 줄어든 임금체계가 본 궤도로 정상화되기는 거의 불가능해 소득상실은 퇴직 때까지 계속될 터다.
단순화하여 가정해보자. 20세 때 취업한 여성 A와 B의 연봉은 각 연 2000만원, 매년 100만원씩 인상. A는 독신(혹은 결혼 후 출산 거부). B는 30세에 결혼·출산·양육으로 퇴직, 5년 후 직장 복귀. B의 35세 재입사 때 초봉은 2500만원, 매년 100만원씩 인상.
A와 B의 소득의 차이를 따져보면, B는 A에 비해 30세부터 5년 동안 1억6000만원의 소득을 얻지 못하며, 35세에 직장 복귀해도 A보다 연봉이 매년 1000만원씩 낮다(A의 35세 때 연봉 3500만원). 정년이 55세라면 B는 A보다 총 3억7000만원(1억6000만+2억1000만)의 소득을 놓치게 된다.
B의 출산·육아에 따른 기회비용은 3억7000만원인 셈이다. 이 정도 비용을 마음속에서 계산하면서 애를 낳겠다는 결심을 하기란 쉽지 않다. A가 그런 경우다. 애를 하나 더 낳는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선택일 것이다.
물론 A의 기회비용도 있다. 가정의 단란함, 자식 키우는 재미 등은 금전적으로 계산은 어렵지만 그가 선택하지 않음으로써 잃게 된 것임엔 틀림없다. 그럼에도 그는 3억7000만원의 기회비용을 지불하지 않겠다는 쪽을 택했다.
결국 저출산 대책의 초점은 B의 기회비용을 어떻게 낮출 것인가에 있다. 정부가 아무리 지원을 늘린다고 해도 B의 기회비용 3억7000만원에는 도저히 미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연공급 임금체계가 걸림돌
만약 B의 출산·양육 시기 5년간의 기회비용 1억6000만원에 대해 그가 대신 택한 출산, 이를 통한 가정의 행복 등으로 상쇄할 수 있다고 하면 문제는 재입사 당시의 낮은 초봉이다. A와 B가 비슷한 능력을 갖췄다면 매년 1000만원의 임금격차는 옳지 않다. 임금체계가 연공급이 아니라 능력급(能力給)이라면 B의 재입사 초봉은 A와 그리 큰 차이는 나지 않을 것이다.
저출산의 배후에 연공급 임금체계가 숨어 있다는 얘기다. 워킹맘의 기회비용은 그 외에도 직장 내 편견, 남성중심의 조직문화에 따른 차별 등 적지 않다.
저출산 대책은 단순한 출산율 제고만이 아니라 경제구조 전반을 염두에 두고 풀어가야 한다. 고령사회를 맞아 여성의 경제활동참가가 범사회적 과제로 떠오르는 시점이 아닌가.
조용래논설위원 choy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