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문일] 양배추와 리더십
입력 2010-10-04 17:47
‘김일성저작집’을 감옥에서 통독했다는 일본의 전직 외교관 사토 마사루의 이야기. 김일성의 유훈통치가 이뤄지고 있는 북한을 이해하려면 ‘김일성저작집’을 읽어야 하며, 그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은 소련붕괴 전후 시기를 다룬 42∼44권이라는 것.
제42권에 ‘향산군을 비롯한 관광지를 훌륭히 정비하는데 대하여’라는 1989년 연설이 실려 있는데 외화벌이 수단으로서 관광의 중요성을 강조한 내용이다. 서양요리보다 조선요리로 돈을 벌어야 한다며 음식 비평을 하는데 ‘김일성 레시피’라고 해도 될 만큼 일가견을 편다.
‘옥류관에서 냉면을 먹었는데 요리법이 틀렸다. 냉면국물은 따뜻해야 한다. 그래야 술안주로도 먹을 수 있다.”
“오리불고기를 만들면 안 된다. 중국인을 당할 수 없다. 닭고기로 승부하는 게 좋다.”
“숭어국을 끓일 때 고추와 된장으로 맛을 내는데, 숭어의 맛이 살아나지 않는다. 돌냄비에 데친 다음 거즈에 후추 12∼13알을 싸서 함께 끓이는 게 좋다.”
이는 일례에 불과하다. 눈길이 미치는 모든 대소사에 대해 심오한 식견이 피력되고 세세한 지시가 뒤따른다. 인민들은 전지전능(全知全能) 앞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아들 김정일의 현지지도라는 것 역시 이런 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3대 세습을 하게 된 손자 김정은 역시 같은 방법으로 권위를 세우려고 할 터이다.
장기 집권자들의 리더십은 대체로 가부장(家父長)적이다. 이승만과 박정희, 마오쩌둥과 덩샤오핑이 전형적이다. 이승만과 마오가 건국의 주역으로서 조부형(祖父型) 이미지라면, 국가 목표를 정해 국민을 일사불란하게 몰아 간 박정희와 덩은 엄부형(嚴父型)이라고 하겠다. 대만의 장제스, 싱가포르의 리콴유도 비슷하다.
청와대 밥상에 김치 대신 양배추를 올리라고 했다는 이명박 대통령은 자부형(慈父型) 리더십이라 부를 만하다. 이 대통령은 다른 대통령들보다 시장을 자주 찾아 상인들의 손을 잡았다. 집권 초기의 대불공단 전봇대 발언이나 어린이 납치가 일어날 뻔한 일산의 경찰서를 찾아가 범인 검거를 촉구한 일도 그런 틀로 보면 이해가 쉽다. 그러나 민주주의 국가에 적합한 리더십은 아니다.
우리 대통령들의 연령이 대체로 높다 보니 가부장적 이미지가 불식되기 어렵다. 서구 국가는 물론이고 이웃 일본도 총리와 국민은 수평적 관계다. 국가지도자가 너무 세세한 곳에까지 의견을 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문일 논설위원 norw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