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 신학강좌] 교회는 무엇인가
입력 2010-10-04 17:51
(13) 공인 직후의 시련
로마제국이 기독교를 공인하자 환호성이 끝이지 않았다. 그 오랜 시련을 이겨낸 기독교인들은 그 영광의 면류관을 자랑하였다. 이제 배교하거나 변절했던 기독교인들에게는 혹독한 비판과 조롱이 날아갔다.
그런데 실제 문제가 터졌다. 칼타고라는 곳은 북아프리카 기독교의 중심지 중 하나였다. 거기 주교를 새로 임명해야 하는데, 박해시대에 배교하였던 전력이 있는 이가 안수한 주교가 임명되었다. 그러자 그곳에서 난리가 났다. 그런 사람을 주교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그러면서 그들 마음에 맞는 사람을 주교로 임명하는 변이 터졌다. 교황청에 대한 반란이었다. 이런 혼란을 겪으면서 그 새 주교가 죽게 되자 도나터스라는 사람이 대를 이었다. 그때부터 문제는 초대교회를 뒤집어놓는 일대 난투가 벌어진 것이다.
기독교 공인의 그 터질 듯한 감격이 가시기도 전에 이런 엄청난 교회 분란이 터진 것이다. 우리교회도 해방의 감격이 충천하던 때에 신사참배 문제로 교회가 결국 분열하는 사건이 있지 않았던가. 꼭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 난리는 사람이 교회를 거룩하게 하는가 라고 하는 중대한 문제를 던져주었다. 교회는 이 중대한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결국 어거스틴 때에 가서야 이 논쟁은 결말을 보았다. 로마교회는 결국 교회를 거룩하게 하는 것은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총뿐이라고 하는 것을 확인하고 선포하였다. 하지만 도나티스트들은 사람이 우선 성결해야 한다고 버텼다. 교회 분열의 첫 페이지가 이렇게 해서 기록되었다.
교회는 이후 계속해서 똑같은 문제에 부닥친다. 성례나 설교가 그 집행자의 거룩함 때문이 효력이 있다면 그것은 도덕과 수양이지 기독교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셨다. 그런데 예수님께마저도 많은 사람들이 빈정댔다.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이런 것 어디서 다 배운 건가. 나사렛에서 뭐 좋은 게 나오겠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우선 유다 시골 목수의 아들이요 범죄자로 십자가에 달리신 이를 먼저 받아들이지 아니하고서는 주님을 예배할 수 없다. 어느 누구도 불완전하고 분열하고 때로 불충한 교회의 스캔들을 받아들이지 않고는 하늘나라의 시민이 될 수 없다. 내버려지고 가난하고 욕먹는 지극히 작은 자들과 함께 자리를 같이할 생각을 하지 아니하고서는, 참된 교회의 교인이 될 수 없다.
교회는 때로 부패하지만 재출발하지 못할 정도로 부패하지는 않는다. 잘못하기도 한다. 그러나 회복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가끔 잠자기도 한다. 그러나 다시 깨어나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우리는 고고하고 순수한 영혼, 그런 조건을 가지고 주님을 만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우리는 거기서 주님을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가 주님을 만날 수 있는 곳은 주님께서 함께 계시는 가난한 자들과 외로운 자들 그리고 내버려진 자들 속에 우리도 함께 있을 때 만날 수 있는 것이다.
민경배 백석대학교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