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원 “유인촌 장관, 인간으로서 근본이 덜 됐다” 독설

입력 2010-10-04 16:38


연극, 영화, 방송을 넘나들며 종횡무진 활약해 온 배우 최종원(60). 그가 새로운 출발선에 서 있다. 지난 7월 28일 태백·영월·평창·정선 지역구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 정치인으로 변신했다. 지난달에는 민주당 강원도당 위원장까지 맡았다.

40년간 입고 있던 연기자란 익숙한 옷을 벗어 던지고, 정치인으로 옷을 갈아입은 뒤 의욕적인 행보를 펼치고 있는 그를 향한 시선은 양면적이다. 불신의 대상이 된 지 오래인 정치판에 새바람을 불러 일으킬 것이라는 기대와 이전 스타 연예인 출신들이 대부분 그러했던 것처럼 ‘얼굴 마담’에 머물고 말 것이라는 우려가 엇갈린다.

그의 임기는 2년도 채 남지 않았다. 이광재 전 지역구 의원이 강원도 도지사 선거에 출마하면서 치러진 보궐선거에서 당선됐기 때문이다.

지난 9월 상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연극계 후배인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의 날선 신경전으로 주목을 끈 최종원 의원을 지난달 2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났다. 추석 연휴 다음날이었지만 의원실은 국정감사 준비로 분주했다. 최 의원은 기대했던 생활한복 차림은 아니었지만 와이셔츠 맨 윗 단추를 푼 ‘파격적인’ 모습으로 기자를 맞았다. 2시간가량 진행된 인터뷰에서 그는 국회의원으로 변신하게 된 배경과 의정활동에 대한 각오를 격정적으로 털어놓았다.

-정치와는 어떻게 인연을 맺었나.

“1997년 대통령 선거 때 김대중 후보의 TV찬조연설을 하게 된 게 시작이었다. 찬조연설 후보자들 명단 맨 아래에 내 이름이 적혀 있었는데 김 전 대통령이 나를 찬조연설자로 정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 사실이 알려지자 주변에서 난리가 났다. ‘다치게 된다’며 다들 만류했다. 내가 출연한 CF 기업은 물론이고, 방송사도 이미 예정된 촬영까지 취소시켰다. 세상 참 더럽더라. 김대중 후보가 당선되지 않으면 이민 가려는 마음까지 먹었을 정도였다. 김 대통령이 당선되니 바로 다음날 방송국에서 프로그램 같이 하자고 전화가 왔다. 세상 인심이 참 그렇더라. 노무현 대통령도 2002년 후보자 경선 때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그래서 2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낙후된 내 고향 강원도, 그리고 공연예술계를 지원해 달라는 것이었다. 노 대통령이 그러겠다고 해 선거운동에 나섰다. 그 후 2004년 총선 때 문화예술계를 대표해서 비례대표 4번인가 받을 거라는 말이 돌았다.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된다면 문화예술계를 위해 많을 일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안 됐다.”

-연예인 출신 정치인들 가운데 성공한 케이스가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있다.

“(정치판에 들어와) ‘얼굴마담’으로 끝난 연예인들이 많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런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노력 하겠다. 40년 연기자 인생을 부끄럽지 않게 살아왔다. 그 마음으로 의정 활동을 할 것이다. 나는 정치 기술 같은 거 모른다. 그저 지역주민들을 대변하고,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열심히 할 뿐이다.”

-보궐 선거에는 어떻게 출마하게 됐나.

“6·2 지방선거에서 강원도지사에 출마한 이광재 후보를 위해 열심히 뛰었다. 그가 2004년 태백·영월·평창·정선 국회의원 선거에 처음 출마할 때부터 도와줬는데 지난 선거에서도 그런 차원이었다. 별다른 욕심도 없었다. 당선되면 강원도지사 문화특보라는 명함 하나 새겨주면 그것으로 만족한다고 했다. 그런데 보궐선거가 임박해서 이 지사가 자신의 지역구에 출마하라고 하더라. 처음에는 ‘내가 무슨 국회의원이냐’며 거절했지만 그 뒤로도 계속 권하는 바람에 받아들였다.”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 보니 어떤가. 이전과 달리 행동에 제약이 많을 텐데.

“‘의원은 품위가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동료 의원들도 있지만 나는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 지금까지 살아온 그대로 살면 되는 거다. 국회의원은 옷도 잘 입고, 욕도 하지 말고, 품위도 지켜야 한다고 하지만 나는 그렇게 살 생각은 없다.”

-추석 연휴 때 지역구를 찾은 다른 의원들과 달리 서울에 머물렀다. 왜 그랬나.

“지역은 연휴 전에 돌았다. 민주당 강원도당 위원장에 뽑히고 난 다음날부터 일요일까지 사흘 동안 지역구를 다녔다. 월요일부터는 서울에서 국정감사 준비하며 지냈다. 명절 때 지역구 가면 누가 반기겠나. 가족들 모처럼 만나 노는 자리에 내가 끼어들어 도움 되는 거 하나 없다. 경조사나 잘 챙기고, 주민들 많이 다니는 삼거리에서 인사나 하라고 국회의원 뽑아준 건 아닐 게다. 시장, 군수가 지역 행정을 잘 펼칠 수 있도록 필요한 국가 예산을 따주는 게 지역구 국회의원의 역할이다. 선거운동 할 때 노인정 찾아다니며 말했다. ‘자주 찾아뵙지 못하겠지만 서울에서 지역 발전 위해 누구보다도 열심히 일하겠다’고.”

-유인촌 문화부 장관과의 신경전이 대단한 것 같다. 유 장관의 어디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드나.(그는 유 장관을 향해 ‘정권의 완장을 차고 앞장서는 호위관 같은 모습을 보인다’ ‘일단 한 대 맞고 시작해야 한다’ 등의 독설을 잇따라 쏟아낸 바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통일부, 환경부 이런 곳은 누가 정권을 잡더라도 상관하지 않고 일관된 정책이 나와야 한다. 이런 부처까지 권력에 취하고, 권력의 눈치를 보면 대통령 바뀔 때마다 정책이 뒤바뀌게 된다. 유인촌 장관은 좌·우파 논리를 꺼내들어 이전 정권에서 임명된 산하기관장들을 무더기로 몰아냈다. 그러고 나서 임명한 사람들이 죄다 자기 패거리들이었다. 문화예술계를 위해 도움이 되는 정책을 내놓기는 커녕 완장 찬 것처럼 무례하게 행동하지 않았냐. 문화예술인으로서 자격이 없지만 인간으로서도 근본이 덜 됐다.”

-최 의원이 추진했던 ‘고한 예술인촌’이 무산된 데 따른 개인적인 감정이 섞여 있는 건 아닌가.

“그렇다. 지역주민들의 동의를 받아 2005년부터 추진한 사업을 유 장관이 하루 아침에 뒤집어 버렸다.”

‘고한 예술인촌’ 사업은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에 있는 폐광 ‘삼척탄좌’를 활용해 예술인 전용 창작실, 공연장, 박물관 등을 갖춘 예술인 마을을 만드는 사업이다. 최 의원이 중심이 돼 2005년부터 추진해 온 이 사업은 2008년 1월 문화부에서 사업 승인을 받았고 예산도 111억원이 확정됐다. 그러나 지난해 2월 삼척탄좌를 다녀간 유 장관이 ‘예술인촌은 수익성이 없다’고 말한 후 사업은 웰빙스파와 숙박시설, 와인 바 등이 들어서는 ‘광산 테마 파크’로 변경됐다.

-현 정부의 문화정책에 대해 평가한다면.

“지난 정부의 문화정책 대원칙은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였다. 그런데 이번 정부는 ‘지원하면서 감시 한다’이다. ‘돈 줄 테니 내 말대로 해라’ 이런 얘기다. 국립극단 법인화도 문제가 있다. 국립극단은 배우들이 어려운 여건을 이겨내며 60년 역사를 이끌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사정을 알만한 장관이라면 그들의 급여를 현실화해 주고 좋은 작품 만들어 공연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 줘야 한다. 국립극단 직원들이 긍지를 느낄 수 있도록 하는 일이 급선무인데 그런 일은 제쳐두고 경쟁력을 이유로 몰아붙이기만 해서야 되느냐.”

-임기가 1년8개월 남짓 남았다. 많지 않은 기간인데 임기 중에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어려운 여건에서 활동해 온 문화예술인들의 복지를 향상시킬 수 있는 법안 마련에 힘을 보태겠다.국민연금, 건강·고용·산재 보험 등 가장 기초적인 권리인 4대 보험도 제대로 적용받지 못하는 문화예술인들이 적지 않다. 정병국 한나라당 위원과 서갑원 민주당 의원이 관련 입법을 주도하고 있는 데 거기에 적극 동참해 법안이 통과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낙후된 강원도를 위해서도 할 일이 많다. 강원도는 내가 떠나오던 60년대 후반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 사정이 어려워졌다. 중석(重石)광산으로 유명했던 영월군 상동읍 지역은 한창 때 3만명이 살 정도로 북적거렸는데 지금은 인구가 900명으로 줄었다. 그것도 80%가 노인이다. 고향만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하지만 욕심 부리지 않겠다. 내가 뭘 찾아서 한다기보다는 지역 발전을 위해 열심히 일해 온 이광재 지사가 시작했던 일을 마무리 짓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유치 활동을 적극 지원하고, 문화·예술·관광이 어우러진 새로운 관광정책도 추진하겠다. 2015년에 만료되는 ‘폐특법(폐광지역개발지원에관한특별법)’ 적용 시한이 연장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당선된 후 첫 국정감사인데 준비는 잘 하고 있나(그는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에 속해 있다).

“문화예술정책과 방송 분야를 집중적으로 파고들 생각이다. 외주 제작사에 대한 방송사들의 불공정 행위, 영화진흥위원회 운영의 문제점 등을 집중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배우로서 최종원을 스스로 평가한다면.

“연기자로 연극, 영화, 방송 등 3개 매체에서 주요 상을 수상한 사람은 대여섯 명밖에 되지 않을 거다. 내가 그 안에 든다. 그만큼 연기자로서 치열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한다. 연극협회 이사장을 할 때는 50억원이던 연극계 국고 지원금을 3년 만에 109억원으로 늘릴 정도로 연극과 연극인을 위해 열심히 일했다. 내 돈 써가며 협회 일 하느라 평생 어렵게 장만했던 아파트를 팔고, 전세로 옮겼을 정도로 열심히 일했다.”

-배우와 국회의원 가운데 솔직하게 어느 게 더 좋나.

“아직까지 잘 모르겠다. 국회의원으로서 최선을 다하겠지만 언젠가는 다시 배우로 돌아가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게 2년 후 일수도 있고, 6년 후 일수도 있겠지만. 연기자로 살면서 늘 선배다운 자리가 어떤 것인지를 생각하며 선배답게 행동하려고 노력했다. 국회의원도 마찬가지 아니겠나. 어느 것이 옳고, 그른 가를 판단해 옳은 길을 걷겠다. 그렇게만 한다면 최종원의 (국회의원으로서의) 인생도 잘 산 것이 되지 않겠나.”

대담=라동철 문화과학부장 rdch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