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아침] 사랑의 여백

입력 2010-10-04 17:26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창 2:18)



하나님은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고 그에게서 갈빗대 하나를 취하여 그것으로 여자를 만드셨다. 그리고 서로 사랑하도록 하셨다.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창 2:24)

사람과 사람이 사랑을 할 때에도 서로 자유로운 입장에서 상대를 선택해야 하므로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의 만남과 선택에 대해서 절대로 개입하지 않으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의 자녀들과는 결혼하지 말 것을 권고하셨으나 일단 사랑이 시작되면 하나님은 한번도 말리시거나 반대하신 적이 없다.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헤스론은 람을 낳고 람은 아미나답을 낳고 아미나답은 나손을 낳고 나손은 살몬을 낳고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마 1:3∼6)

여기서 이미 네 명의 이방 여자가 등장하는데 다말, 라합,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는 가나안 여자이고 룻은 모압 여자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간섭하지는 않더라도 사랑의 표현은 하나님의 눈치를 보아가며 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나님은 늘 일방적으로만 사랑하셨을 뿐 다윗의 때까지 사랑의 고백을 받아보지 못하신 분이기 때문이다.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시 18:1)

사람을 창조하시고 3000년 만에 처음 받아보신 사랑의 고백이 그나마도 조건부이다. 나의 힘이 되었기 때문에 사랑한다는 것이다. 사랑을 받아보지 못하신 하나님은 너무 사랑에 열중하고 있는 자보다는 사랑 못 받는 쪽에 오히려 더 마음을 쓰신다. 야곱은 본의 아니게 자매와 그 여종 둘까지 아내로 얻었으나 동생 라헬과의 사랑이 각별했다.

“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칠년 동안 라반을 섬겼으나 그를 사랑하는 까닭에 칠년을 며칠같이 여겼더라”(창 29:21)

그는 레아의 몫으로도 7년을 더하여 14년의 머슴살이를 했다. 그러나 실은 모두가 라헬을 얻기 위한 것이었다. 그가 라헬만을 사랑하니 하나님은 레아를 가엽게 여기셨다.

“여호와께서 레아가 사랑받지 못함을 보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나 라헬은 자녀가 없었더라”(창 29:31)

야곱의 사랑에 간섭하시지는 못해도 잉태와 출산은 하나님의 소관이었던 것이다. 결국 레아와 두 명의 여종에게서 10명의 아들이 태어난 후에야 라헬에게도 아들 하나를 주셨다. 그리고 라헬은 두 번째 아들을 낳다가 죽었다. 사랑의 캔버스를 페인트로 가득 채우는 뜨거운 사랑도 좋지만 사랑받지 못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동양화처럼 여백을 남겨두는 사랑도 아름다운 일이다. 조선시대 여인들은 오래간만에 돌아온 남편을 부엌에서 살짝 내다보며 행주치마를 입에 물고 입만 방긋 하는 그런 사랑을 하며 살았다.

김성일(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