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 화재 건물 2009년말 소방점검서 29건 ‘불량’… “예고된 사고’ 분통

입력 2010-10-03 22:20


부산 해운대구 우동 우신골든스위트 주상복합건물의 화재가 ‘예고된 사고’임이 속속 드러나면서 피해 주민들이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지난 1일 오전 11시34분쯤 4층 미화원 작업실에서 발생한 불은 오후 2시10분쯤 불길이 잡히는 듯 했으나 이후 외벽을 타고 급속히 38층까지 번졌다. 당황한 소방당국은 헬기 3대를 추가로 투입해 진화에 나섰지만 이미 걷잡을 수 없었다.

고급스런 아파트 이미지를 위해 사용한 외벽 알루미늄 패널과 단열재가 화재를 키운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알루미늄 패널은 두께 12㎜에 가로·세로 1m 이하의 크기로 철근콘크리트 구조 건물의 ‘H빔’이나 벽면에 약간의 공간을 두고 붙인다. 이 공법은 지진에는 강하지만 화재에 취약하다는 게 최대 단점인데 이번 화재로 입증됐다. 이 건물은 알루미늄 패널 안쪽에 단열 효과가 높은 유리섬유를 붙였고 인화성 물질인 폴리염화비닐 접착제를 사용해 외벽에 패널을 고정했다.

주민들은 “외벽의 인화성 물질에 강한 바닷바람이 불면서 불길이 건물 위쪽으로 급속하게 번져 피해가 커졌다”고 주장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알루미늄 패널의 바깥부분을 특수 페인트로 칠해 황금색을 냈는데 이 페인트가 불길을 옮기는 작용을 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건물 관리사무소의 소방시설물 관리도 허점으로 드러났다. 이 아파트는 지난해 12월 소방시설 종합점검에서 소화설비 17건, 경보설비 5건, 피난설비 2건, 소화활동설비(승강기) 5건 등 모두 29건의 불량내용이 지적돼 시정조치를 받았다.

주민대책위 이모(58)씨는 “건물 관리원들이 미화원 작업실 등에서 쓰레기 등을 소각하거나 취사행위를 한다는 제보가 가끔씩 들어오는 등 평소 부실한 건물 관리가 이 같은 화를 불러왔다”며 분개했다. 화재 당시 30여분 만에 건물 밖으로 피신한 이씨는 “당시 화재와 관련한 비상벨이나 안내방송 등도 없었다”며 “관리업무가 엉망임이 드러났다”고 말했다.

여기에 소방당국의 부실한 초기 진화가 피해를 키운 것으로 입주민들은 보고 있다. 김모(60)씨 등 주민들은 “소방대원들이 유리창을 부수고 적극적인 진화에 나섰다면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며 “출동한 소방대원들이 30여분간 우왕좌왕하다 뒤늦게 진화에 나섰다”고 지적했다.

소방대원들이 출동 직후 건물에 진입하지 못한 것은 관리사무소 직원들의 제지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소방 관계자는 “관리사무소 직원들이 ‘건축주의 동의 없이 유리창 등을 파손할 경우 모두 배상해야 한다’고 해 대응이 늦어진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소방차 8대가 출동하면서 고가사다리차를 출동시키지 않은 것도 소방당국의 잘못된 상황파악 때문인 것으로 드러났다.



다른 소방 관계자는 “초고층 건물이어서 상황을 예측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며 “외장재에 포함된 폴리염화비닐 성분 때문에 불의 확산 속도가 엄청나게 빨랐던 것 같다”고 전했다.

주민들은 “초동 진화에 실패한 소방당국과 건축업체, 건물 관리사무소, 건물 인허가 기관 등에 대한 철저한 수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산=윤봉학 기자 bhy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