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라운지] ‘집의 노예’ 조형물

입력 2010-10-03 18:54


중국 푸젠성(福建省) 샤먼(廈門) 시내 한복판에 ‘팡누(房奴·집의 노예) 조형물’이 있다. 사람이 손으로 땅을 짚고 발은 하늘을 향한 채 거꾸로 걸어가고 있으며, 몸통은 온통 벽돌로 둘러싸였다.

이 조형물은 현재 중국 중앙미술학원 석사과정의 작가 리빙이 7년 전인 2003년 국제조형물전람전에 참가해 제작한 것이다. 원래 작품 이름은 ‘계승’을 의미하는 ‘촨청좡타이(傳承狀態)’다. 작품 제작 당시 민난(푸젠성 남부)인이 세상에 돌아다니고, 그 뿌리는 중국에 있다는 걸 주제로 형상화했다고 한다.

팡누는 최근 중국에서 가장 유행하는 신조어다. 집값이 천정부지로 오르면서 사람들이 집의 노예가 됐다는 의미에서 생겼다. 주택 당국이 집값 안정을 위해 각종 규제정책을 쏟아내지만 서민들에겐 여전히 내 집 마련은 꿈같은 일이다.

이 조형물은 지금까지는 별로 주목 받지 못했다. 그러다가 최근 한 누리꾼이 팡누를 연상시킨다며 ‘팡누 조형물’이라고 명명하면서 갑자기 관심이 높아졌다.

주택 문제로 고생하는 서민의 모습, 거꾸로 가는 세상 등 요즘 중국인의 정서가 잘 표현돼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에 이 조형물 사진이 실리자 수많은 누리꾼이 토론하며 댓글을 달았다. 특히 팡누 누리꾼들은 주택 관련 애환과 정부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는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 댓글들은 “주택 때문에 노예가 된 우리들의 삶이 적나라하게 표현돼 있다” “팡누 조형물은 깨뜨릴 수 있겠지만 우리 팡누들의 마음 속 분노는 치유할 수 없다” 등등이다.

베이징 신경보는 지난 1일자 평론에서 “요즘 솟아오르는 건물들은 어찌 보면 모두 팡누 조형물이다”며 “(정부가) 근본적으로 주택가격을 잡지 못하면 팡누 조형물은 영원히 넘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리빙은 언론 인터뷰에서 “이 조형물은 많은 사람이 평생 고생해 주택을 구매하는 걸 포함한 일상생활 행태를 반영하기도 했다”면서 “인터넷에서 팡누 누리꾼들과 함께 토론하는 기회를 갖겠다”고 말했다.

베이징=오종석 특파원 js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