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에너지로 암 조직만 콕 찍어 잡는다
입력 2010-10-03 17:33
수술이 불가능할 때 쓰이는 항암제나 방사선의 치료 효과를 배가시키는 암 치료법이 등장, 국내외 암 전문가들이 주목하고 있다. 기존의 항암 화학요법, 방사선요법, 수술요법 등과 함께 제4의 암 치료법으로 새로이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될 것으로 기대되는 온열요법이 바로 그것이다.
대한온열암치료연구회는 최근 서울 강남세브란스병원 8층 인흥홀에서 첫 학술 심포지엄을 열고, 그동안 100% 현대의학 태생이 아니라는 이유로 대체의학의 일종으로만 홀대를 받은 온열 암 치료법에 대해 집중 조명했다. 이 자리에는 이대여성암전문병원 산부인과 김승철·주웅, 삼성창원병원 혈액종양내과 윤성민, 강남세브란스병원 흉부외과 이두연·함석진, 분당차병원 부인암종합진료센터 정상진 교수 등 전국 30개 병원의 암 전문의 80여명이 참석했다. 이들이 온열요법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미국과 독일 같은 선진국에서도 기존 치료법을 보완하는 단계이긴 하지만 비교적 활발하게 쓰이고 있고, 국내에서도 이 치료법을 이미 도입한 병원이 10여곳에 이르고 있기 때문이다.
◇온열요법이란=암 발생 부위에 극초단파, 초음파, 고주파 등 열에너지 전달이 가능한 수단으로 암 조직만 선택적으로 죽이는 치료법이다.
온열요법의 장점은 암 주위의 정상세포에는 손상을 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칼을 대거나 피부를 특수 탐침으로 찌르지 않고 시술해 인체 내외부에 특별한 부작용도 일으키지 않는다. 또 혈액암만 빼고 고형 암(형태가 있는 암)이면 거의 대부분 적용이 가능하다. 실제 폐암, 췌장암, 간암, 위암, 복막의 악성중피종(복강암), 두경부암, 골암, 흑색종, 식도암, 유방암, 방광암, 직장암, 자궁암 등에 대한 임상 연구결과가 속속 나오고 있다.
온열요법에는 크게 고주파와 초음파를 이용한 두 가지 방법이 있다. 고주파 온열치료기는 헝가리에서 개발된 ‘온코더미아’와 독일서 개발한 ‘셀시우스’가 있고, 초음파 온열치료기로는 중국서 개발한 ‘하이푸’가 있다.
국내에선 2008년부터 암 치료에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현재는 서울 강남세브란스병원과 이대목동병원, 성남 분당차병원, 수원 아주대병원, 안양 샘병원, 남양주 에덴요양병원, 인천성모병원 등이 시술 중이다. 이밖에 대전 을지대병원과 건양대병원, 부천 순천향대병원, 광주 조선대병원도 각종 암 환자 치료에 사용하기 위해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암 치료 효과와 한계는=암 치료를 위한 온열요법은 주 2∼3회씩 총 12회 시술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매회 시술 시간은 약 1시간 정도 소요된다. 시술비는 회당 30만∼40만원. 시술은 암이 생긴 장기가 있는 부위와 일직선상의 피부에 온열 자극기를 대고 체외에서 열에너지를 만드는 고주파 또는 초음파를 집중 조사하는 방법으로 이뤄진다.
암 조직에 전기장을 형성시켜 암세포 주위의 온도가 올라가면, 암세포가 그 에너지를 흡수하면서 자연스럽게 내부 온도가 상승되고 그 여파로 전해질 균형이 깨져 암세포가 파괴되는 원리다.
지금까지의 효과는 기대 이상이다. 2008년부터 폐암 환자 치료에 이 치료법을 병행해 온 강남세브란스병원 흉부외과 이두연 교수는 수술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항암제나 방사선 치료 효과도 미미할 때 온열 치료를 받은 환자들의 암 크기가 더 이상 커지지 않거나 작아진 예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최근 3년간 외과적 수술로 절제가 불가능한 폐암 환자 200여명에게 항암제 또는 방사선 치료와 함께 온열요법을 시행해 왔다.
물론 이에 대한 반론도 있다. 삼성창원병원 혈액종양내과 윤성민 교수는 “온열치료는 항암제 치료나 방사선 치료와 병행 시술할 경우 치료 효과를 상승시키는 것으로 밝혀졌을 뿐 단독 사용 시 효과 검증이 미흡한 게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항암제 투약과 온열 치료를 병행해 환자의 상태가 눈에 띄게 호전됐을 때 어느 정도가 온열요법에 의한 효과인지를 판정하기가 애매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를 검증할 수 있는 임상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글·사진=이기수 의학전문기자 ks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