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스팸어랏’, 진지함 버리고 코미디 택했다
입력 2010-10-03 17:29
뮤지컬 ‘스팸어랏’ 무대는 공개코미디 녹화장처럼 유쾌한 웃음으로 가득하다. 요즘 한국 관객의 입맛에 딱 맞는 코미디로 꽉 채운 덕분이다.
‘스팸어랏’에는 아더왕와 원탁의 기사가 등장한다. 하지만 진지함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도 없다. 아더왕은 손으로 말 모양을 그리고 깡총거리며 등장한다. 하인 팻시는 야자열매로 말발굽 소리를 내며 황당한 등장에 보조를 맞춘다. 랜슬럿, 로빈 등 아더왕의 곁을 지키는 기사들도 모두 빈틈이 많다.
영국과 미국에서 흥행한 ‘스팸어랏’의 기본적인 웃음 코드는 풍자와 패러디다. 영국 정치를 풍자하고 브로드웨이 뮤지컬 주인공을 등장시켜 조롱한다. 한국판 ‘스팸어랏’에서도 이런 틀은 유지된다. 정서차이는 훌륭하게 극복했다. 라이센스 뮤지컬임을 모른다면 창작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전개가 자연스럽다.
웃음의 포인트는 상황극이다. 배우들은 ‘무한도전’이나 ‘1박2일’ 같은 리얼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서 출연자들끼리 만들어내는 웃음과 비슷한 웃음을 만들어낸다. ‘스팸어랏’에는 개그맨 박명수가 목소리로 특별출연한다. 그가 TV에서처럼 호통을 치고 무대의 배우들은 이를 받아내면서 관객을 웃긴다. 시종 이런 방식의 전개로 시쳇말로 ‘빵빵 터지는’ 웃음을 만든다. 배우들의 호흡은 웃음을 증폭시키는 데 큰 몫을 한다.
뮤지컬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없어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물론 뮤지컬 배경지식이 있는 관객이라면 웃음의 강도가 더 세진다. 호수의 여인과 갈라핫 경은 뮤지컬에 의례 등장하는 감상적인 듀엣곡을 부른다. 하지만 가사는 “침 튀었잖아”, “원래 그래” 이런 식이다.
아더왕 일행이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공연해야 하는 미션에서는 ‘오페라의 유령’의 팬텀, ‘미스사이공’의 킴, ‘시카고’의 벨마 등 12개 뮤지컬의 캐릭터가 등장해 우스꽝스런 장면을 연출한다. 뮤지컬을 본 사람이라면 더 크게 웃을 수 있는 지점이다.
아더왕으로는 정성화와 박영규가 번갈아 나선다. ‘맨 오브 라만차’ 등 여러 뮤지컬에 등장했던 정성화의 무대와 ‘카멜레온’을 불렀던 박영규의 무대는 패러디하는 게 조금씩 다르다. ‘스팸어랏’은 내년 1월 2일까지 서울 양재동 한전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1588-5212).
김준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