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장 합동 총회 현장에서

입력 2010-10-03 14:52


[미션라이프] 지난 주 저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총회가 열린 강원도 홍천 대명비발디파크에 있었습니다. 총회는 1년에 한번 열리는 최고 회의로 교회-노회-총회로 이어지는 구조 속에서 정점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해 국회처럼 한국교회의 바닥 정서가 올라오는 정치 현장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한국 최다교회와 보수·개혁신앙을 강조하는 예장 합동의 총회를 지켜보면서 교단이 지니고 있는 역동성을 새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총대만 해도 1400명이 넘고 올라온 안건만 200개였으니 얼마나 치열한 토론이 벌어졌겠습니까.

서로 다른 생각을 갖고 치열한 논쟁을 벌이는 총대들을 보며 교단을 사랑하는 그들의 열정을 봤습니다. 하지만 토론이 과열되자 고성이 오가고 의장석 앞에서 발언권을 얻기 위해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습니다. 어떨 때는 거룩한 예배의 공간이었지만 어떨 때는 온갖 욕망과 불만이 분출되는, 익명성이 보장되는 인터넷 공간 같았습니다.

현장을 취재하면서 떠오른 궁금증이 몇 개 있습니다. 그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1. 10여명 안팎의 총대가 장시간 벌이는 법 적용 논쟁을 1300여명이 듣고만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2. 9월 30일 선거제도를 바꾼다고 분명히 결정했는데 다음날 왜 뒤집었을까.

3. 광주의 모 교회 문제가 극단을 치닫고 있는데 총대들은 무슨 생각에서 재판국 결정을 찬성·반대하려는 것일까.

4. 중요한 문제를 모두 임원회에 맡길 것이면 총회를 여는 이유는 무엇일까.

5. 도대체 일선 교회의 부흥전략과 교단 발전방안은 언제 논의하는 것일까.



고민에 대한 제 나름대로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1. 교단 헌법을 깊이 연구한 법조인을 자문단으로 초빙한다. 법 적용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들에게 자문을 구하는 것이다. 그래서 안건 처리를 효율적으로 처리한다. 그렇지 않다간 ‘봉숭아 학당’처럼 법 해석을 두고 말잔치만 벌어진다. 올해 결정이 내년 위법이라며 무효화 되는 해프닝을 막을 수도 있다.

2. 지도자라면 최소한 논리적 일관성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하다. 어제 결정과 오늘 결정이 다르다면 누가 그 사람을 믿겠는가.

3. 총회와 노회는 교회를 위해 존재한다. 따라서 총회는 분쟁에 휘말린 교회를 살기 위한 방법이 무엇일까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이건 괘씸죄나 정치보복쯤으로 풀 문제가 아니다. 수백, 수천명의 생명이 걸린 문제다. 만약 나의 잘못된 결정으로 교회가 공중분해 된다면 주님 앞에 섰을 때 뭐라고 해명할 것인가.

4. 1년에 한번 총회를 개최하는 대신 1주일간 체육대회를 여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목회나 교회 일로 총대들이 많이 지쳐있을 테니. 대신 총회 첫날 탁월한 임원을 뽑아 모든 일을 효율적으로 맡긴다.

5. 총회는 현장의 교회를 돕기 위한 후방 부대다. 현란한 말잔치가 넘쳐나는 정치판이 아니다. 5년, 10년 뒤 발전 방안, 로드맵도 그리지 못하는 총회는 식물 총회나 마찬가지다. 시대의 흐름에 뒤떨어질 수밖에 없다. 적어도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처럼 정책을 생산하고 제안할 수 있는 ‘싱크탱크’ 역할을 하는 기구가 총회 내에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

제가 맡고 있는 교단은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과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입니다. 두 교단의 교인수만 합쳐도 한국교회 성도의 절반에 육박합니다. 그래서 저의 생각은 이렇습니다. ‘두 교단만이라도 정말 하나님 앞에 올바로 선다면 한국교회는 거룩한 시민, 제사장 국가를 위한 견인차 역할을 할 것이다.’

홍천=국민일보 미션라이프 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