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지 직거래’ 정부 지원받는 대형유통업체, 농산물값 되레 더 받아
입력 2010-10-01 18:22
대부분 재래시장보다 비싸… 풋고추는 2배
저리로 정부 지원금 수백억원을 받아 산지와 농산물 직거래를 하고 있는 대형 유통업체들이 오히려 재래시장보다 농산물을 비싸게 팔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농림수산식품부가 1일 한나라당 정해걸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농식품부는 2008년부터 ‘농식품 소비지·산지 협력사업’ 명목으로 롯데마트에 농산물 매입자금 100억원을 연리 4%의 저금리로 빌려줬다. 또 이마트, 킴스클럽마트, 이랜드리테일 등에도 매년 85억∼100억원을 저리로 융자해 올해까지 3년간 모두 728억원을 지원했다. 이들 대형 유통업체의 산지 직거래를 지원함으로써 농민은 도매가격보다 높게 농산물을 팔고, 소비자는 중간 유통단계 없는 싼 값에 살 수 있도록 하는 게 사업 목적이라고 농식품부는 설명했다.
그러나 농수산물유통공사가 9월 한 달간 채소류 도·소매가격 실태를 파악한 결과 오이 호박 당근 풋고추 마늘 양파 대파 부추의 경우 대형 유통업체의 소매가격이 재래시장보다 비쌌다. 심지어 풋고추 1㎏ 가격은 지난달 29일 기준으로 대형 유통업체(1만4370원)가 재래시장(7200원)의 두 배나 됐다.
최근 가격이 급등해 사회 문제로까지 부각된 배추 1포기도 지난달 27일부터 가격 역전 현상이 발생하기 시작해 29일에는 대형 유통업체의 포기당 가격이 재래시장보다 820원이나 비쌌다. 한 대형 유통업체 관계자는 “농산물 보관비용과 매장 진열 등에 따른 부대비용을 고려해 가격이 높아진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정 의원실 관계자는 “농민을 위해 쓰라고 빌려준 국가 재정이 사기업인 대형 유통업체들이 싼 값에 농산물을 확보하고, 매장을 운영하는 데 쓰이고 있는 셈”이라고 비판했다.
더욱이 농민들이 대형 유통업체와 산지 직거래를 해 얻는 이득도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농식품부는 2009년 대형 유통업체가 산지에서 밭떼기 등으로 사들이는 6개 품목(사과·감자·양파·참외·고랭지 배추와 무)의 거래가격을 도매가와 비교한 결과 배추 무 등은 농민들이 도매가보다 불과 42원과 11원씩(이상 1㎏당) 더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참외의 경우 15㎏당 가격은 도매가보다 353원이나 싸게 대형 유통업체에 공급됐다.
이처럼 이 사업이 부실하게 시행되고 있지만 정부는 직거래 가격 책정에 일절 관여하지 않고 있다. 정 의원은 “농민과 소비자 모두에게 이익을 주려던 당초 사업 목적은 사라지고, 대기업의 배만 불려주는 등 부작용이 심각하다”고 비판했다.
노용택 기자 ny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