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의 날’ 씁쓸한 현주소… “생활비 좀” 자녀상대 소송 급증

입력 2010-10-01 18:14


화장품 판매원 등으로 자식 여섯을 홀로 키운 A씨(70·여)는 최근 만성간염과 관절염 등으로 생계유지가 막막해지자 딸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딸들은 자신들도 경제 사정이 어려워 부양료를 내기 힘들다며 외면했다. 도움을 구할 데가 없는 A씨는 결국 법원에 부양료를 지급받게 해달라고 청구했다. 재판부는 “혼자 몸으로 딸들이 성년이 되기까지 양육했고 작은딸은 손녀도 돌봐준 점을 감안하면 어머니를 부양할 의무가 있다”며 매달 20만원을 지급하라고 심판했다.



남편이 사망한 후 조카를 아들로 입양해 키운 B씨(86·여)는 아들이 결혼한 뒤 16년간 함께 살다가 고향인 경남으로 내려간 뒤 지금은 지인의 집에 살고 있다. 현재 예금 640만원이 전 재산인 B씨는 치매 등으로 혼자 거동할 수도 없는 처지다. 은행 간부인 아들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어떤 이유인지 들어주지 않아 법원에 호소했다. 법원은 아들에게 “고향에 구입해 줬다가 다시 매각한 집값 2500만원과 매달 10만원을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10여년 전 아내와 이혼해 고시원에서 홀로 생활하고 있는 C씨(71)는 허리가 아파 일을 할 수 없게 되자 법원에 부양료를 청구했다. 하지만 자식들은 “가족을 외면해 놓고 이혼한 지 한참이 돼서야 부양료를 청구하는 것은 신의칙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부양의 의무는 부모가 과거에 양육 의무를 다했는지 여부에 따라 결정되는 게 아니라 혈연관계라는 끈에 의해 요구된다”며 매달 80만원을 지급하라고 결론지었다.

이처럼 생계가 어려워 법원에 부양비를 청구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1일 서울가정법원에 따르면 2003년까지 많아야 10∼20여건에 머물렀던 부양료 청구 건수는 2004년 이후 적게는 39건에서 많게는 58건까지 증가했다. 올해도 8개월 만에 36건이 새로 접수됐다.

인용 건수도 크게 늘어 2003년까지는 4건 이하였으나 2008년에는 20건에 달했다. 중간에 조정이 이뤄지거나 청구를 취하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민법상 경제력이 없는 부모는 자녀나 배우자를 상대로 부양료를 요구할 수 있다. 부양료 심판은 정식 소송이 아니기 때문에 청구액과 무관하게 간단한 청구서만 제출하면 절차를 밟을 수 있다. 액수는 양측의 생활형편과 관계 등을 감안해 정한다.

서울가정법원 관계자는 “과거에는 부모가 자식을 상대로 재판을 청구하는 것을 금기시하는 분위기가 있었는데 최근에는 법률에 포함된 당연한 권리라는 의식이 높아져 청구 건수가 많아졌다”고 말했다.

안의근 기자 pr4pp@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