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상 꿈꾸는 자, ‘병상’을 품어라… 고통받는 사람들과 함께 할 임상목회 필요성 제기

입력 2010-10-01 17:44


“목사님, 제가 암에 걸렸대요. 말기라서 수술도 못 한대요.”



어느 날 성도가 찾아와 이렇게 말했을 때, 목회자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무슨 암입니까? 몇 기입니까? 진단은 어디서 받았습니까?” 식으로 마치 검진 중인 의사인 양 질문을 계속하거나, “일단 기도하면서 치료를 해 봅시다, 다 잘 될 겁니다”라고 앞서가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가장 많은 것은 “다 하나님의 계획하심이 있어서 생긴 일입니다. 성경에서 욥을 보세요. 이해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으니 더 큰 축복을 얻지 않습니까”라고 설교하는 경우일 것이다. 문제는 이런 반응들 속에 지금 이 순간 상대의 마음에 어떤 아픔이 있고, 어떻게 해야 진정으로 위로가 되는가를 고심하는 배려는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7일 ‘한국임상목회교육개론’이라는 책이 출간된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총회 국내선교부에서 엮은 이 책은 임상목회교육(Clinical Pastoral Education)에 필요한 이론과 방법론을 집약한 교과서 개념의 책이다. 임상목회교육이란 병원, 교정시설, 노숙인 시설 등 고통 받는 사람들이 있는 현장에서의 목회에 대한 실습 교육을 말한다. 이번 책 출간을 계기로 한국임상목회교육협회를 비롯한 일각에서는 “목회자 양성 과정에 임상목회 교육이 필수화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 책의 공동 저자인 유영권(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교수는 위의 상황을 설명하면서 “목회자의 가장 바람직한 반응은 경청·공감하는 것”이라고 했다. “왜 내가 암에 걸려야 하나요?”라는 환자에게 “갑자기 진단을 받으시니 이해도 안 되고 당황되시죠”라고 공감해 주고, 그에 대해 “맞아요”라며 풀어놓는 말들을 진지하게 들어주고, “착하게 살아오신 것 같은데 왜 이런 병을 주시는지 납득이 안 되신다는 거죠?”라면서 상대의 분노와 억울함을 요약해주는 것이다. 이때 환자는 자신의 감정을 수용하고 반영해 주는 ‘목회적 돌봄자’에게 신뢰를 주고 치료적 동맹(therapeutic alliance)이 수립될 수 있다고.

유 교수는 “이런 돌봄을 이론이 아니라 최소 400시간 이상 병원 등에서의 실습을 통해 체득하는 것이 임상목회교육 프로그램”이라고 설명했다.

임상목회교육은 미국에서 1920년대에 태동했고 현재 미국은 목사 안수를 받기 위해서는 임상목회교육을 한 차례 이상 이수해야 한다. 미국임상목회교육협회(ACPE)가 운영하는 교육 과정만 연간 7000개 정도 된다.

국내에서는 2001년 협회가 발족했고, 서울 세브란스병원에서 처음으로 임상목회교육 과정을 시작해 현재는 고려대 안암병원, 대구 동산의료원, 충남대병원 등으로 확대했다. 신학교 중에서 임상목회교육을 개설한 곳은 연세대 이화여대 감신대 서울신대 등. 그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은 세브란스병원에서 1단위(400시간) 프로그램을 필수과정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이 멀다. 임상목회교육의 기본과 전문 교육을 이수하고, 2년여 동안 실제 현장 사역을 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자격인 ‘감독(슈퍼바이저)’이 있어야만 교육 과정을 운영할 수 있는데 현재 국내에는 이 감독이 총 40여명에 불과하다. 또 협회에서는 병원 원목이나 군목 등 상담을 주로 하는 직책은 기본 교육을 이수한 사람에게만 자격을 주는 식의 제도 개편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한은자(고려대 안암병원) 원목실장은 “신체적, 정신적 고통 가운데 있는 사람에게는 일반적인 방법의 전도가 어렵다”면서 “일단 찾아가서 위로하고 아픔을 나누는 과정이 있어야만 복음도 전할 수 있기 때문에 원목에게는 필수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한편으로는 일반 목회자까지 꼭 이런 과정을 이수해야 하느냐는 의문이 생길 수 있다. 책의 다른 저자인 홍인종(장신대) 교수는 “임상목회교육 과정은 비단 심리와 상담 등 이론뿐 아니라 신학, 철학 등 모두를 위한 실습”이라며 “본래 목회의 중요한 부분이 ‘돌봄’이라는 점에서 ‘돌봄 실습’은 당연히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부산장신대에서 학생들을 지도하는 감독인 동시에 부산평강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안화웅 목사는 “목회자가 되려고 한다면 반드시 이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교회 사역자 모두 과정 이수자인 것은 물론이다.

안 목사가 말하는 임상목회교육의 장점은 성도들과 진정으로 소통하는 목회자로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이제는 목사가 강단 위에서 내려와야 합니다. 현대사회를 사는 사람들은 갈수록 ‘공감’의 경험을 하지 못하고 있어요. 이럴 때일수록 상대의 영혼을 살피며 욕구가 무엇이고, 아픔이 무엇인지 살피는 목회자만이 그리스도의 사랑도 전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이 교육은 목회자 자신의 정체성 형성과 심리적 치료에도 도움이 된다고 유 교수는 설명한다. 그러면서 ‘다리를 절단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 젊은이’의 예를 들었다. 이 젊은이가 절망에 가득 차서 자신을 찾아온 목사를, 기독교를,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폭포처럼 쏟아낸다고 할 때 자신감과 확신이 있는 목사라면 마치 떼쓰는 어린아이를 품는 엄마처럼 그 모든 반응을 담담히 받아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복음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은 그 뒤의 일이라는 것. 그러지 못하고 목사가 즉각적으로 ‘신성모독이다’ 식으로 화 내고 호통을 친다면 젊은이가 어떻게 기독교인이 될 수 있겠느냐면서 유 교수는 “지금도 준비 없이 현장에 들어선 목회자들로 인해 많은 사람이 ‘쫀쫀한 하나님’ ‘꽉 막힌 기독교’라는 인상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면 서글퍼진다”고 했다.

황세원 기자 hws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