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극 감독 ‘적인걸-측천무후의 비밀’… ‘당나라의 셜록 홈즈’ 적인걸, 그가 밝힐 女帝의 비밀
입력 2010-10-01 22:15
중국 당나라 고종의 황후였던 측천무후(624∼705)는 현대에 와 통치자로서 재평가를 받기 시작했지만 지난 1300년간 동양 유학자들이 그녀에게 내린 평가는 ‘임금과 나라를 망치고 권력을 위해 자식까지 죽인 요부’라는 것이었다. 정치가로서의 유능함과는 상관없이, 가부장적 전제군주제 사회에서 여성의 전횡은 그 자체로 정부의 기강을 무너뜨리는 폐해를 낳은 게 사실이다.
영화 ‘적인걸-측천무후의 비밀’은 측천무후 시대 무후의 통치에 협력했던 명재상이자 명수사관인 실존인물 적인걸(630∼700)을 다룬 이야기다. 무후는 황제 즉위식을 앞두고 자신의 모습을 본뜬 거대한 불상을 건설토록 한다. 그러나 공사 현장에서는 의문의 방화 및 살인 사건이 끊이지 않고, 태후가 반대파를 제거하기 위해 자작극을 벌이고 있다는 소문까지 떠돈다. 무후는 측근인 정아와 반대파 적인걸에게 수사를 맡기고, 수사가 진행될수록 여제의 즉위를 막기 위한 음모의 전말이 드러난다. 적인걸은 특유의 예리한 관찰력과 지능을 토대로 수사망을 좁혀가며 여러 번 반전과 맞닥뜨린다.
적인걸로 분한 류더화(劉德華·유덕화)는 녹슬지 않은 무술 솜씨와 연기력으로 빛나고, 류자링(劉嘉玲·유가령) 역시 측천무후의 카리스마를 완벽하게 드러낸다. 컴퓨터그래픽으로 복원된 당나라 수도 장안성의 거대하고 화려한 모습, 적인걸·정아·배동래가 펼치는 흥미진진한 활약과 로맨스 역시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다.
하지만 ‘천재탐정의 수사극’이라는 영화사의 홍보와는 달리, 무협·액션에 추리극의 모양만 입혔다는 느낌을 주는 것도 사실. 관객의 예상과는 다른 방향으로 추리가 전개돼도 뒤통수를 치는 반전의 효과를 주기보단 사건을 해결하는 주인공의 당연한 활약이라고 여겨진다. 거기다 당의 신하로서 궁녀 출신 태후에게 제위가 넘어가는 모습을 참지 못하고 반란까지 일으켰던 적인걸은 별 뚜렷한 이유도 없이 갑자기 무후에게 충성을 다한다. 추리와 무술, 로맨스까지 소화하는 사이 충(忠)이라는 유교적 명분의 요체를 두고 갈등하는 당대의 인물 적인걸은 사라진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122분이 짧게 느껴질 정도로 흥미진진하다. ‘황비홍’ ‘칠검’ ‘올 어바웃 우먼’ 등을 연출한 쉬커(徐克·서극)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제67회 베니스영화제 경쟁부문 초청작이기도 하다. 12세 관람가. 7일 개봉.
양진영 기자 hans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