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침침한 동네를 우리 손으로 예쁘게… 담벼락에 벽화 그리는 개구쟁이들

입력 2010-10-01 17:33


방학동 벽화동아리 ‘담쟁이들’

요즘 서울 전철 1호선 방학역 1번 출구를 이용하는 이들은 모두들 싱글벙글이다. 특히 아침 출근길에 나선 이들은 ‘아’ 하는 감탄사까지 곁들이곤 한다. 여느 때 같으면 밤새 버린 담배꽁초가 수북하고 누군가 취중에 실례를 했는지 지린내가 나기도 했던 담벼락에 하얀 뭉게구름이 둥실 떠가고, 푸른 나무들이 손을 흔들고 있으니 어찌 기분이 좋지 않겠는가.

어두침침하던 담벼락을 멋진 풍경화로 바꿔 놓은 것은 서울 방학2동 방아골종합사회복지관 아동벽화동아리 ‘담쟁이’. 담쟁이는 ‘담벼락 아래 개구쟁이들’의 줄임말이다. 회원 15명은 지난 27일과 28일 학교가 파하자마자 방학역으로 달려와 담벼락에 담쟁이 넝쿨처럼 붙어서 그림을 그리고 색칠을 했다.

“어때요? 우리가 그린 그림 예쁘죠. 저건 나쁜 연기가 나오지 않는 풍력발전기고요. 저건 전기를 아낄 수 있는 태양열집이에요.” 까치발을 하고 색칠을 하던 박희원(11·서울 신방학초 4)양이 그림을 설명했다.

“나무와 참새들도 예쁘죠. 깨끗한 공기를 마셔서 그래요.” 옆에 있던 김광림(11·서울 신방학초 4)양이 앞쪽 그림을 가리키며 덧붙였다. 붓칠을 하면서도 잠시도 쉬지 않고 소곤소곤한다. 단짝인 이들은 손과 입이 함께 바빴다.

“사실 이거 우리가 다 그린 건 아니에요. 우린 도화지에 그리고 벽에는 복지관 선생님들이 그려주셨어요. 저 위쪽 칠은 마사회 아저씨들이 하셨어요.” 동생 황인하(11·신학초 4)군과 함께 색칠을 하다 붓으로 칼싸움 흉내를 내던 황서현(13·신학초 6)군이 의젓하게 말한다. 서현군은 9월 첫째 주와 둘째 주 수요일에 환경보호를 주제로 밑그림을 그렸다고 알려 준다.

벽화제작을 도와주기 위해 나선 왕소영(15·서울 방학중 2)양은 “아이들 그림이 너무나 귀엽다”고 했고, 신미희(15·서울 방학중 2)양은 “서프라이즈”라고 외치면서 두 손을 번쩍 치켜들었다. 박현주(15·서울 방학중 2)양은 “아마도 이 골목이 깨끗해질 것”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아이들 옆에서 뒷바라지를 하던 방아골종합사회복지관 사회복지사 김대근씨는 “아이들이 중심이 된 활동이긴 하지만 아이들 힘이 모자라는 부분은 동네 어른들과 기업이 도와주고 있다”면서 “이번 벽화는 마사회 창동지점에서 비용을 마련해줬다”고 말했다. 담쟁이는 2009년 9월 방아골종합사회복지관에서 또래 모둠 문화 활동을 기반으로 아동들을 마을문화의 주체로 성장시키기 위해 만든 동아리다.

“우리가 어떻게 벽화를 그리겠느냐”며 일주일에 한 번 있는 모임 시간에도 장난질을 치던 아이들은 지난해 11월 복지관 지하주차장에 벽화를 완성하곤 싹 달라졌다. 첫 모임 때부터 참가했다는 노유나(11·서울 방학초 4)양은 “처음에 벽화를 다 그린 다음 너무 신났고,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고 자랑했다. 노양은 복지관 3층 점프교실(올해 5월)과 안방학동 1126번 버스 종점(7월)에도 벽화를 그렸고, 동네 노인정에는 타일에 그림을 그려 붙이는 타일벽화(6월)를 그렸다며 손가락을 하나하나 꼽았다.

아이들이 벽화작업을 하면서 얻은 것은 자신감뿐이 아니다. 인하군이 “형은 성질도 급하고 화도 잘 내고 툭하면 때렸는데 이제는 그러지 않는다”고 하자 서현군이 눈을 부라렸다. “너도 마찬가지였잖아. 너야말로 툭 하면 화냈잖아!” 형 말이 틀리지 않는지 인하군은 그저 헤헤 웃기만 했다.

희원양은 “전에는 내성적이어서 발표도 잘 하지 못했는데, 벽화를 그리고 나서는 공부시간에 손을 번쩍 들게 됐다”고 털어놓는다. 나쁜 버릇은 바로잡고 소극적이던 성격을 적극적으로 바꿔주기까지 했다는 얘기다. 그런가 하면 벽화를 그리면서 화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키우는 아이들도 생겨났다. 광림양은 “미술을 전공해볼까 한다”면서 우선 친구가 많이 생겨서 좋다고 했다.

아이들이 좋아지니 누구보다 부모들이 기뻐했다. 서현·인하 형제의 어머니 이금희(43·방학3동)씨는 “서현이는 과잉행동장애가 있는 게 아닌가 싶을 만큼 집중력이 떨어졌는데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많이 치분해졌고, 학습태도도 좋아져 일일학습지 선생님이 놀랄 정도”라면서 “아이들을 사랑으로 지도해준 복지사 선생님 덕분”이라고 말했다.

김대근씨는 “앞으로 벽뿐만 아니라 전봇대, 맨홀 뚜껑 등에 아이들과 함께 그림을 그려 방학동을 예쁜 동네로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했다. 아이들은 김씨의 말에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김혜림 선임기자 ms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