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의 계절에 ‘세계작가 페스티벌’ 부위원장 맡은 고은, “문인들 소통의 바다로”
입력 2010-10-01 17:28
10월의 고은(77)은 민감하다. 가을 참깨밭처럼 건드리면 터질 것 같은 계절이 고은의 10월인 것이다. 지난 27일 서울 광화문의 한 음식점에서 그를 만났다. 오는 3∼6일 단국대학교(총장 장호성) 주최로 죽전·천안캠퍼스를 순회하며 열리는 ‘세계작가 페스티벌’을 설명하는 자리였다.
페스티벌를 아우르는 테마로 ‘바다의 시 정신-소통의 공간을 노래하다’를 정한 장본인이 고은 시인이었기에 배석을 했다지만 ‘노벨문학상’ 수상자 발표를 코앞에 둔 시점이어서 관심은 자연히 그쪽으로 흘러갔다. 하지만 그는 일언지하였다.
“노벨의 ‘노’자는 이 자리에서 빼주게나.” 그러면서 이달 초 이스탄불의 한 문학행사에 초청되었을 때의 감회를 슬쩍 끼워 넣었다. “이스탄불은 가을이 먼저 와 있더구먼. 한국보다 먼저 낙엽이 뚝뚝 떨어지고 있더군.” 페스티벌 설명이라는 공식(公式)과 가을에 닥친 시인의 심경이라는 비공식(非公式)이 교차하고 있었다.
“행사 주제를 그렇게 정한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어요. 시대가 달라져도 국가 간의 이익, 종교, 이데올로기의 충돌은 여전합니다. 서로의 경계를 허물자는 취지에서 바다의 시 정신을 내세웠습니다. 19세기나 혹은 100년 전 쯤, 지구상에는 쉽게 갈 수 없는 먼 곳이 많이 있었고 특별한 경험이 기다리고 있었지요. 이제 시공간이 압축돼 어디를 가든 우리와 다를 것 없는 삶을 사는 시대가 됐지만 갈등은 사라지지 않았지요. 인간의 마음은 여전히 원근법이 작동하고 있지요. 경계 내부에 울타리를 쌓아가면서 경계 허물기를 주장하는 탁상공론이 허무하기도 합니다.”
단국대 석좌교수로 이번 페스티벌 추진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은 그는 4일 단국대 죽전캠퍼스에서 기조발제도 할 예정이다. 그를 포함해 한국 문인 29명 외에 해외 작가 11명도 초청됐다.
스페인 시인 안토니오 콜리나스, 프랑스 시인 클로드 무샤르, 폴란드 시인이자 문예운동가인 예지 일크, 미국 시인 크리스토퍼 메릴과 더글러스 메설리, 일본 소설가이자 시인인 쓰지이 다카시, 그리고 중국의 모옌, 베이다오, 란망…. 지중해, 대서양, 발트해, 태평양 연안에서 온 작가들이다.
“해양을 중심에 둔 시 정신이 긴요하긴 한데 실제 삶에서는 너무 동떨어져 있지요. 이럴 때 매우 고전적인 고민이 들어있기는 하지만 시 정신이란 먼 데 있는 물건이 아니라는 걸 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우리 근대시의 첫 얼굴인 육당 최남선의 ‘해(海)에게서 소년에게’(1908)는 한국 현대시의 운명을 바꾼 작품입니다. 거기엔 당시 육당이 소년의 꿈을 의인화하고 일본에 가서 바이런의 시를 읽은 체험이 녹아있지만 그 시의 출현은 한국현대시의 운명을 표상하고 있지요. 과거엔 우리 시가에 바다가 거의 없었지요. 최치원의 시가에 중국으로 건너갈 때의 풍랑이 시련으로써 조금 보이기도 하고 장보고의 경우 해양공간을 인도까지 확장했지만 그건 명나라 해양정책의 일부로서의 바다였을 뿐, 바다는 우리에게 금역의 공간이자 절망과 죽음의 부정적 대상이었지요. 그러나 육당의 시에 바다와 소년이 등장한 것은 엄청난 사건입니다. 우리가 현대시의 운명을 바다에서 시작했다는 것 외에, 국가주의나 지역주의를 떠나서 이야기하자는 차원에서도 바다는 큰 의미가 있지요.”
조선시대의 진보여성이라 할 황진이마저도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 감을 자랑마라 일도창해 하면 다시오기 어려우니 명월이 망공산할 제 쉬어간들 어떠리”라고 읊었듯 바다는 두 번 다시 돌아오기 어려운 금지의 공간이자 부정적인 대상이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육당이 대단한 발견을 한 것이지요. 이제 바야흐로 한국문학이 바다 앞에서 청장년이 된 것인데 바다는 시의 운명적 기호로서 우리 앞에 존재하는 것이죠. 노 하나 저으며 죽느니 사느니 하면서 살아남아 100년인데 사실은 바다는 강력한 원점이라고 할 것입니다.”
이것으로 공식적인 멘트는 가름되었다. 하지만 자리를 옮겨 예의 비공식이 이어졌다. 갈증 탓에 주문한 와인 한 병이 비워졌을 때 그는 불쑥 “이럴 땐 목포 삼학도의 갈매기가 보여”라고 말머리를 내밀었다. 그의 눈에 원근법은 지워지고 있었다. 사실 그가 노벨문학상에 가장 접근되어 있는 시인임을 부정할 사람은 없다. 그만큼 그는 예감으로 가득한 문학의 숲이기도 하다. 묻고 싶었던 건 이에 대한 전조였지만 노벨의 ‘노’자는 꺼내지 않기로 한 마당에 망설이고 있을 때 그가 한 마디를 보탰다. “아침에 산에 올라가 구호 외치는 사람을 보면 슬퍼져. 살려고 발버둥치는 것 같아서 말이지. 그렇다고 등산 좋아하는 사람들이 내 말을 오해하면 안되는데….” 그게 노벨상과 관련한 심경이냐고 물을 새도 없이 그는 다음을 기약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국문학의 결실이 노벨문학상으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해마다 외신들에 의해 유력 후보로 거명되는 ‘예비적 현실’에서 ‘있어야할 현실’로의 이행은 우리 문학의 평면성을 뒤집는 사건이 될 것임은 분명하다. 예정대로라면 올 노벨문학상 수상자 발표는 다음주 목요일이다.
글 사진 정철훈 선임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