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집착하는 여자와 그 여자를 기다리는 남자… 조경란 ‘복어’
입력 2010-10-01 17:29
가족의 트라우마가 그 구성원의 운명을 지배한다는 건 불문율이다. 소설가 조경란(39·아래사진)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그의 할머니가 복어국을 마시고 자살했다는 건 알려진 사실이다. 그건 그가 태어나기 전의 일이지만 그 비극은 작가인 그를 내내 압도해 왔다. 그가 장편 ‘복어’(문학동네)로 그 비극에 정면 승부를 걸었다. 치사량의 독을 품은 복어와 마찬가지로 독해지지 않으면 쓸 수 없는 소설이다.
“슬픔과 아름다움과 두려움과 죽음. 나는 내가 압도당하는 것에 관해서 쓴다. 나를 사로잡은 것과 나를 놓아주지 않는 것에 대해서. (중략) 글을 쓰게 된 순간부터, 이 소설을 쓰게 되기를 기다려왔다. 나로서는 단 한 번밖에 쓸 수 없는 이야기를. 너무 일찍 말하고 싶지 않았다.”(‘작가의 말’)
4부로 구성된 ‘복어’는 그 안에 67개의 세부적인 이야기들이 제각각 번호가 매겨진 채 소제목을 달고 전개된다. 홀수 번호는 한 여자의 이야기고 짝수 번호는 한 남자의 이야기다. 두 사람에게는 집안에 자살자가 있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조각가인 여자는 레지던시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서울에서 도쿄로 거처를 옮겨온다. 그러나 그녀는 죽음에 골몰한다. 왜 그녀는 죽음에 그토록 집착하는 걸까. “아홉 살의 아버지. 불안한 눈으로 젊은 엄마를 지켜보던 사내 아이. 할머니가 국그릇을 두 손으로 받쳐들었을 때 할머니의 반달무늬 긴 치맛자락을 와락 잡아당겼던 아이. 할머니는 할아버지와 내 아버지가 지켜보는 앞에서 단숨에 국그릇을 비우고 쓰러졌다. 아홉 살의 아버지는 다 보았다, 그 모든 순간을.”(114쪽)
건축가인 남자는 한 모임에서 한 여자를 눈에 담는다. 뭔가가 빠져나가버린 듯한 얼굴이었다. 여자의 얼굴에서 자살한 형의 잔상을 발견한 남자는 죽음의 충동에 시달리는 삶을 살고 있는 여자를 기다리기 시작한다. 복어에 관한 책을 읽고 복어 요리법을 배우는 여자를…. 두 사람은 죽음에 대해 말하기 시작한다. “그냥 끌린 거예요. 복어한데. 자연스럽게 말입니까? 그런 셈이죠. 분명한 목적도 없어요. 오른손이 왼손에 이끄는 것처럼요. 그럼 복어는 오브제 같은 것이로군요.”(171쪽)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이들이 말하는 죽음은 아주 말랑말랑한 은유와 상징의 덩어리로 변한다. 슬픔과 아름다움과 두려움과 죽음이라는 예술의 원형을 찾아가는 소설이기도 하다. 서로 모르는 두 사람이 서로 아는 두 사람이 되어가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우리 모두의 이야기를 지향한다.
정철훈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