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자금 몰려 증시 훈풍… 통화당국은 ‘금리 딜레마’
입력 2010-09-30 18:28
글로벌 환율전쟁에 한국경제 곤혹
최근 금융시장과 거시경제 전반의 최대 변수는 환율이다. 글로벌 환율 전쟁의 여파다. 중국 등 신흥국 통화에 대한 절상 압력이 세지면서 원화 강세 추세도 더욱 강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에 따라 자본이익에다 원화가치 절상에 따른 환차익까지 노린 해외자금이 주가와 채권값을 초강세로 이끌고 있다. 주가 상승에 따른 가계의 자산소득 증가와 저금리로 회사채 발행이 늘면서 기업 자금조달 비용 감소 등의 긍정적인 효과가 발생하는 셈이다. 반면 통화정책을 담당하는 한국은행과 환율정책을 담당하는 기획재정부는 정책운용의 폭과 여지가 줄어들어 곤혹스러운 처지로 몰리고 있다. 특히 통화정책당국은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해 금리인상을 미룰 수 없는 상황인데, 이 경우 높아진 금리 차익을 노린 자금까지 국내로 유입, 원화 강세를 더욱 가속화하게 돼 심각한 딜레마에 직면했다.
◇환율 전쟁 주식시장에는 훈풍되나=미국과 중국에 의해 촉발된 환율 전쟁은 단기적으로 우리 증시에는 도움을 줄 것이란 분석이 많다. 통화약 세를 도모하기 위한 경기완화정책이 글로벌 유동성을 풍부하게 하면서 외국 자본이 신흥시장으로 유입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9월에 외국인은 코스피 시장에서 4조3099억원을 순매수했다. 외국인 매수 등으로 코스피지수는 한 달 동안 130포인트 이상 상승했다. 외국인은 채권시장에서도 9월에 2조원 이상을 순매수했다.
원화 강세에 따른 환차익은 외국인들에게 또 다른 부수입이었다. 원화 강세가 되면 외국인들은 주가 상승으로 이익을 보는 데다 달러로 환전했을 때 원화의 절상폭만큼 수익을 올릴 수 있다. ‘꿩 먹고 알 먹는 장사’인 셈이다.
시중에 자금이 넘쳐나 시장금리가 빠르게 떨어지면서 회사채 발행도 크게 늘어났다. 금리가 낮을 때 저비용으로 자금을 조달하려는 기업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금융권에 따르면 9월에 발행된 회사채 물량은 모두 6조5600여억원으로 지난달보다 60% 이상 늘어났다.
◇곤혹스러운 통화당국=한국은행 김중수 총재는 “현재 연 2.25%의 기준금리는 경제성장률(올해 5.9% 예상)에 비해 지나치게 낮은 수준”이라고 입버릇처럼 얘기해 왔다. 최근 기자단과의 세미나에서는 “우회전 깜빡이(금리인상 시그널)를 켜면 우회전한다”면서 조만간 금리인상을 단행할 것임을 시사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의 환율 전쟁은 이 같은 한은의 각오를 무색하게 할 것 같다. 환율이 급락(원화가치 상승)하면 기준금리를 올리기가 쉽지 않아서다. 한은이 기준금리를 올리면 내외금리차로 인해 외국인 자본 유입을 더 부추기게 된다. 달러 등이 몰리면 환율은 더 떨어지게 된다. 미국 중국 일본 EU가 너나 할 것 없이 수출 활성화를 위해 환율을 올리려는(통화가치 하락) 마당에 기준금리를 올릴 경우 홀로 엇박자를 낸다는 비난을 받을 수도 있다.
외국자본의 계속된 유입은 이미 한은의 통화정책 효과를 무력화시켰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지난 7월 기준금리를 인상했지만 시장금리는 하락 일변도다.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지난 30일 연중 최저치인 연 3.32%로 떨어졌다. 시중은행의 예금금리 역시 계속 미끄럼질치고 있다. 기준금리 인상이 시장금리 인상으로 이어지면서 통화흡수 효과를 거둘 것이라는 기대는 일찌감치 물거품이 됐다.
금융권에서는 한국은행이 7월 기준금리를 올린 이후 추가 인상 기회를 놓치고 동결한 것이 통화정책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외환당국도 고민에 빠졌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원·달러 환율 하락세(원화 강세)가 앞으로 가파르게 진행될 것 같은데 환율 전쟁의 영향으로 외환시장에 개입하는데 더욱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세욱 기자 swk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