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학자들 개인 역량은 충분 뒷바라지 부족해 제자리걸음

입력 2010-09-30 19:04


세계 신학계는 교회가 직면한 모든 문제에 대해 신학과 신앙이 조화를 이룬 해답을 제시하는 데 골몰하고 있다. 이는 신학이 더 이상 세상과 분리된 채 ‘박제화 된 학문’으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는 절박함에서다. 국내 신학자들도 동일한 고민을 하고 있다. 특정 교단, 교회, 인물을 만족시키는 학문이 아닌 온 세상이 공감할 수 있는 담론을 발굴, 보급해야 한다는 시대적 과제에 공감하고 있다. 이들은 “한국교회가 이미 연구능력이 검증된 신학자들뿐 아니라 신진학자들을 통해 수입신학의 재탕이 아닌 한국적 환경에 맞는 신학을 정립하고 세계 석학들을 끊임없이 양성할 수 있는 중장기 프로젝트를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세계가 주목하는 한국 신학자, 분야 있다=한국교회는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세계 신학계에 통할 수 있는 학자들을 보유해 왔다. 하지만 학문의 자율성에 대한 인식 결여, 연구 시간과 집중도 부족, 세계 신학계와의 소통 결핍 등으로 인해 세계적인 학파까지는 형성하지 못했다. 개인적 소양은 충분했지만 집단적 역량은 그에 못 미쳤던 것이다.

사도 바울 연구로 세계 신학자 반열에 오른 김세윤 미국 풀러신학교 교수와 아시아 신학을 주창해온 이문장 전 고든콘웰신학교 교수, 선교신학자 조동진 이태웅 목사 등은 걸출한 학자군으로 분류된다. 김 교수는 1996년 프랑스에서 열린 제51차 세계신약학회 총회에서 한국인 최초로 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독일 튀빙겐대학의 마르틴 헹겔이 서문을 쓴 ‘바울의 기원’과 인자론 연구에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 ‘사람의 아들-하나님의 아들’ 및 신약기독론에 대한 ‘예수와 바울’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한국 신학교육에 처음으로 선교학을 도입한 조 목사는 아시아선교협의회(AMA) 창립을 주도하고 첫 AMA 총회에서 발표한 ‘기독교 선교에 관한 서울선언’ 초안을 작성했다. 이는 1966년 ‘휘튼선언’, 1970년 ‘프랑크푸르트선언’과 맥을 같이 하는 최초의 아시아인에 의한 선교선언이었다. 한국선교훈련원장을 지낸 이 목사는 전인적 통합 선교훈련 모델을 제시, 세계선교신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고 서남동, 고 안병무 교수 등은 사회적 약자의 삶을 대변하려 했던 민중 신학자로 널리 각인됐다. 여성신학자로는 정현경 박사가 아시아 여성 최초로 미국 뉴욕 유니언신학대 종신교수에 임용되기도 했다.

2005년 세계적인 신학사전 독일의 ‘RGG(역사와 현재 속의 종교·일명 에르게 사전)’ 개정 4판에 한국인 학자 5명이 참여해 화제가 됐다. 세계 일반 학계조차 에르게 사전을 가장 객관적인 종교사전으로 평가하고 있다. 서광선(이화여대 명예교수) 김용복(전 한일장신대 총장) 김인수(장신대 교수) 고무송(한국교회인물연구소장) 조병호(성경통독원 대표) 목사 등이 사전 집필진에 참여했다. 특히 조 목사는 한국적 내용이 아닌 세계기독학생선교운동사를 집필해 의미가 남달랐다.

◇‘새장 속 신학’ 아닌 ‘창의적 신학’이 길이다=신학자들은 “과도한 근본주의와 교권주의가 세계와 소통할 수 있는 신학의 출현을 막고 있다”며 연구의 독창성, 상상력을 억제하면 결국 ‘새장 속 신학’에 갇히게 된다고 지적한다.

주도홍 기독교통일학회장은 한국에서 신학자로 살아가기 어려운 학문적 풍토가 있다며 “한국교회는 신학이 교회를 위해 존재해주기를 원하면서도 학문적 성과를 등한시하는 역설을 갖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장훈태 백석대 교수는 “현재 신학교 교수들은 수업과 잡무 등에 허덕이다보니 차분히 연구할 수 있는 시간을 갖기 어렵다”며 “열악한 여건 속에서도 세계 저널들에 논문을 자주 발표하고 관련 세계 학회에 적극 참여하면서 학술 네트워킹을 강화하는 게 필요하다”고 했다. 장 교수는 “서구의 언어 분석중심 신학이 담아내지 못하는 영성을 학문화할 수 있도록 한국교회 지도자들이 세계적 수준에 이른 신학자들에게 연구와 토론의 장을 지속적으로 제공해야 한다”며 “그러기 위해선 목회자들이 다양한 신학담론을 만들어나가는 데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영래 감신대 교수는 “서구교회와 비서구교회의 교량 역할을 해주는 커뮤니케이터로서의 신학자들도 필요하다”며 “신학 연구 전통 등 지적 토대는 풍부하지만 열정이 식어버린 서구교회와 상대적으로 열정은 넘치지만 신학적 자원이 부족한 비서구교회가 협력해 세계가 필요로 하는 신학자를 배양하는 프로젝트를 구상할 때”라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학문에만 머무는 신학으로는 세계 신학계에서 인정받을 수 없다”며 “우리가 처한 한반도라는 지역적 한계를 승화시켜 다양한 일상과 역동성을 함께 묶어내면 ‘지역 내지 특정 영역으로 전문화된 세계 신학’의 탄생도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했다.

함태경 기자 zhuanji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