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심재수 (8) 1000일 새벽기도의 응답 “예수를 전하라”
입력 2010-09-30 17:44
나는 ‘새벽기도형 CEO’를 꿈꿨다. 회사를 경영한 경험이 전혀 없는 사람이 외국 자본을 끌어들여 부도난 기업을 살려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믿을 것은 오직 기도뿐이었다. 하루를 새벽기도로 시작하면서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기대했다. 그때마다 하나님은 놀라운 지혜의 말씀으로 대답을 주셨다. 새벽기도 1000일 ‘D-3’. 경기도 파주 오산리 최자실기념기도원에 올랐다. 기도동산에서 1000일 새벽기도의 피날레를 맞고 싶었다. 가슴이 설레었다. 3일 금식기도를 결심하고 어느 목사님에게 자문을 했다.
“목사님, 금식을 어떻게 해야 하나요? 잘못하면 위험하다고 하던데요.”
목사님의 간단한 충고. “그냥 하세요.”
금식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그때 처음 알았다. 먹다 남은 음식만 보아도 군침이 돌았다. 쓰레기통에 버려진 잔반에 자꾸 눈길이 갔다. 인간은 정말 나약한 존재다. 사흘 금식이 마치 혹독한 형벌처럼 느껴졌다. 드디어 새벽기도 1000일이 되는 날이었다.
“하나님이 이번에는 또 무엇을 보여주실까. 어떤 응답을 주실까.”
그러나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하나님의 음성도 들리지 않았다. 온통 음식 생각뿐이었다. 기도 굴에 들어가 기도에 몰입하면서 비로소 배고픈 생각을 잊어버렸다. 두 시간의 기도가 마치 20분으로 여겨졌다. 그때 펼쳐든 성경말씀이 사도행전 20장 24절이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이 말씀을 통해 큰 깨달음이 왔다. 오직 사업에만 열심을 품어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이었다.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교훈이었다. 사실 나의 뇌리는 24시간 내내 회사 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선교나 전도에 관심을 가질 겨를이 없었다.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 사업 못잖게 중요하다. 그때부터 나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기 시작했다. ‘1000일 새벽기도’를 통해 비로소 ‘예수를 전하는 크리스천’이 된 것이다.
나는 교인들과 거의 교류가 없었다. 그런데 그 즈음부터 나를 만나자는 분이 많아졌다. 영락교회에서는 내게 몇 가지 직분을 주었다. 남선교회 지회장, 구역장, 새 신자 가족부 안내위원, 선교부 서기 등의 직분이 주어졌다. 특히 남성 구역장은 매우 드문 경우였다. 나는 직분을 거절하지 않았다. 신앙은 봉사를 통해 성숙한다. 기업인이 사업에 몰두하다 보면 영성이 피폐해질 가능성이 높다. 기업인도 교회 직분과 봉사활동에 감사한 마음으로 동참해야 한다. 영성을 회복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특별한 새벽기도 날에 특별한 말씀으로 응답을 주셨다. 2000번째 날에는 로마서 10장 14∼15절, 3000번째는 시편 116편 12∼14절, 4000번째는 역대상 16장 15절 말씀을 주셨다. 이 모든 성구들은 당시 상황에 아주 적절한 인생 나침반이 되었다. 기도 응답에 그저 놀랄 뿐이다.
예수님의 행적을 통해 ‘현장 경영'을 배웠다. 예수님은 병든 사람에게 직접 찾아가 그를 치유시켜 주었다. 예수님은 ’나를 찾아오라‘고 하지 않았다. 나는 사무실에 앉아있는 시간이 많지 않다. 공장도 가보고, 우리 기기가 설치된 은행과 점포에도 가본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회사 제품이 점포에 설치되면 마치 옥동자를 하나 낳는 기분이다. 한번은 어느 은행에 설치된 ATM 기기를 유심히 살펴보고 있는데 갑자기 청원경찰이 나타났다.
“왜 여기서 서성거립니까. 신분증 좀 보여주실 수 있나요?”
양복을 차려입은 중년의 남자가 계속 현금 입출금기를 만지고 있는 것을 보고 누군가가 신고를 한 것이다.
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